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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에세이 베스트셀러 :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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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일상 속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쓰는 일이 줄어들다 보니 날이 흐를수록 글쓰기 실력이 하락하고 있다는 걸 블로그를 쓸 때마다 느끼고 있다. 예전부터 알고 있던 내 또래의 한 블로거는 매일 자신의 생각을 글쓰기로 잘 풀어내는데 그 모습을 보면 글이란 계속해서 써야 한다는 걸 느낀다.

 

최근 그 이웃 블로거가 평소처럼 일상에 관한 생각을 담은 글을 올리면서 '허프포스트코리아' 김도훈 편집장이 지난 3월에 낸 에세이 베스트셀러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추천해주었다.

 

그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김도훈 기자는 영화 잡지 '씨네21'의 취재기자를 시작으로 패션 잡지 '긱 매거진'의 피쳐 디렉터를 거쳐 현재는 '허프포스트코리아'의 편집장으로 있다.

 

40대 비혼주의자인 김도훈 기자는 에세이 베스트셀러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라는 책 제목을 지어준 배우 정우성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편집장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어서인지 글쓰기 실력이 무척 뛰어나 책을 읽는 내내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무엇보다 저자는 내가 꿈꾸는 삶을 살고 있었다. 대도시 높은 고층의 아파트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여행과 쇼핑을 좋아하는데 아파트에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사온 쓸모없는 물건과 여러 명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심지어 차가 있음에도 택시를 타고, 양치질을 할 때 수돗물이 아닌 에비앙으로 한다고 언급한 부분에서는 심장이 뛰기도 했다.

 

그는 에세이 베스트셀러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에서 일상의 작은 허영이 주는 자기만족의 기쁨에 대해 말해준다. 그 부분에 공감이 갔던 이유는 나 역시도 일주일에 택배를 3~4개나 받을 만큼 쇼핑을 좋아하며 허영심이라곤 하기엔 그렇지만 나름 고가의 의류 브랜드를 자주 사입기 때문이다.

 

김도훈 기자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저자가 그동안 보았던 영화 속 줄거리를 일상 이야기에 접목시키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데,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재의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는 걸 새삼 느끼며 책도 좋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자주 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에세이 베스트셀러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는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무료함을 느끼는 사람들이나 자신이 평소 생각하는 바를 글로 풀어내고 싶은데 정작 잘하지 못하는, 특히 우리나라 30~40대 남성 독자들이 읽어본다면 공감되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무엇보다 매번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쓰고 단어 선택의 폭이 좁은 나같은 블로거에게 있어 도움이 되는 문장들이 많았는데 아래 남겨놓은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참고해 같은 시간, 같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 40대 남성의 일상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편집자는 내 글에 낭만이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의 제목이 정우성의 흔쾌한 허락으로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로 정해진 날, 나는 스스로 물었다. 나는 낭만적인 사람인가? 내 글에는 낭만이 있나? 나는 낭만이라는 단어에 도통 자신이 없었다. 어느 날 밤 나는 골똘히 낭만을 생각해봤다. 낭만의 사전적 정의는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으로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상태'다.

 

사전적 의미를 되새기며 주변을 둘러봤다. 아파트 9층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는 거슬리는 불빛과 소음이 가득했다. 그 속에서 어쩌면 나는 있는 힘껏 낭만을 추구하며 살아왔던 것도 같다. 집안 곳곳에 있는 쓸모없는 물건들을 사들이는 것도 낭만이었다. 친구와 함께 먹은 '어젯밤의 카레'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도 낭만이었다. '김찬삼의 세계여행'을 문득문득 꺼내 보는 것도 낭만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에서 죽은 개를 떠올리는 것도 낭만이었다. 결국, 나는 부끄러울 정도로 고색창연하게 낭만을 추구하며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에게는 어느덧 중년이 온다. 삶의 여정을 절반 정도 지나온 시점에 잠깐 멈춰서서 스스로 묻는다. 난 성공한 걸까? 이제 나는 저 대사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 어떤 중년을 차를 산다. 젊고 야하고 번드르르한 차를 산다.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그건 성공한 삶인가?

 

잡지사에 다니던 친구는 나에게 가장 진행하기 힘든 코너가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기사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청담동의 근사한 회원제 바에 스탠퍼드나 하버드 출신의 성공한 남자들이 슈트를 입고 등장하는 그런 코너들 말이다. 성공한 남자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공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애쓴다고 인터뷰에서 말한다. 친구는 불평했다.

 

"인터뷰를 하고 화보를 찍으면서도 그게 성공한 삶인지 잘 모르겠어. 성공한 사람들이 성공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옮겨 싣는 것만큼 무의미한 건 없는 것 같아" 그러게.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이 성공에 대해서 하는 말을 듣고 본다. 스티브 잡스는 "인생에 한계는 없다. 이루고 싶은 위치까지 도달하라. 모두 당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 말을 소셜미디어에 싣고 나른다. 그러나 우리는 스티브 잡스가 아니다. 당신이 스티브 잡스가 되는 날도 거의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잡스는 잡스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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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이 나이가 되어도 성공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라고 썼더니 많은 댓글이 달렸다. "스스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성공한 것"이라는 답변이 있었다. "빚 갚는 것"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가장 많은 댓글은 "하기 싫은 건 안 해도 되는 삶"이었다. 옳은 말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을 성공이라고 일컫는다면, 세상은 성공한 자로 넘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 삶일 것이다. 그런 삶은 극히 소수에게만 주어진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책방에 가서 당신을 위로할 만한 책을 대신 고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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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주변의 누군가가 '난 우울증입니다'라고 당신에게 말한다면, 그것은 당신을 온전히 믿기 때문이다. 자신의 나약함을 당신에게 알리는 용기를 겨우겨우 얻었다는 이야기다. 마음의 병을 알리는 것은 진정한 용기와 용맹스러움의 증거다. 나는 당신이 용기를 낸 친구에게 마음의 말을 건넬 수 있는 다정함을 갖고 있기를 바란다.

 

세상은 우울증으로 넘친다. 사람들은 우울증으로 약을 먹는다. 그건 그저 우울하기 때문은 아니다. 뇌가 보내는 불가피하고 불가역적인 신호다. 그걸 고백한다는 건, 병원을 제발로 찾는다는 건, 자신을 다시 다듬어서 세상과 다시 연결지점을 찾겠다는 의욕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다정함이다. 다정함이 당신의 친구들을 구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다정함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하찮은 인간이다. 하찮은 인간과 인간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며 세상을 살아낸다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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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뒤 나는 방 3개짜리 아파트로 이사했다. 세 가지 이유였다. 첫째, 고양이가 들어갈 수 없는 거대한 옷방이 있어야 했다. 둘째, 비염이 고양이 털 때문에 심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앞 베란다와 뒤 베란다 창을 열면 강바람이 집 안 구석구석 훑고 지나가는 고층 아파트여야 했다. 셋째, 고양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을 만큼 넓어야 했다.

 

아파트로 이사 간 해 나는 보험을 두 개, 적금을 하나 가입했다. 그러고는 석양과 강바람이 들어오는 베란다에 앉아 무릎 위의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꽤 살 만하네' 서울이 마침내 내 도시가 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11년이 지났다. 나는 종종 고양이의 눈을 들여다본다. 크리스털처럼 빛나는 고양이의 눈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닮았다. 결국, 내가 그토록 원하던 바다는 바로 여기 있었다. 나는 지난 십 년간 고양이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포기해버린 것들보다 고양이를 더 사랑한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책임감'도 당연히 포함된다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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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필름에서 찾은 사진 속 크레이그 한나는 스물셋이다. 수 천 명이 경적을 울리고 붉은 옷을 입고 소리치던 길거리에서 우리는 괜히 들떠서 의미 없는 뭔가를 외치며 돌아다녔다. 크레이그 한나의 사진을 한 장도 갖고 있지 않았던 나에게 그 순간은 영원히 기억으로만 존재할 것 같았다. 기억은 코닥의 APSA 필름에 그 순간 그대로 봉인되어 있었다.

 

디지털의 세상에서 우리의 기억은 바이트 속을 떠돌다가 끝이 없는 매트릭스 속으로 종종 사라진다. 그것이 진화의 새로운 법칙이라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필름이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잠시 낙담하겠지만 크게 슬퍼하지는 않을 것 같다. 어쨌거나 내 손 위에는 2002년 여름을 봉인해둔 코닥의 APS 필름이 있다. 2003년의 리바이스 골덴 재킷도 있다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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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아버지는 꿈을 꾸셨다. 자꾸 누가 발을 햝는 것 같아 내려다보니 뽀삐가 오른쪽 발을 햝고 있더란다. "아이고 니가 돌아왔구나" 기뻐하시는데 이번에는 왼쪽 발이 간지럽더란다. 알고 보니 뽀삐가 친구를 데려온 거였다.

 

뽀삐는 아버지를 빤히 쳐다보고, 아버지가 다시 둘을 내려다보는 순간 뽀삐는 이미 사라지고 말았다. 대신 뽀삐가 데려온 친구 강아지만 왼쪽 발을 여전히 햝고 있었다. 새 강아지를 들이라는 소리구나. 아버지는 결심했다.

 

그 주말 나는 부모님과 저녁을 먹다가 말했다. "강아지를 데려와야 할 것 같은데요"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뽀삐가 생각나서 아직은 안 돼. 조금 더 있다가"

 

아직 부모님은 개를 키우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도 가끔 뽀삐 이야기를 한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부모님도 개를 다시 키우게 될 거다. 나는 알고 있다. 그게 바로 부모의 심정이니까 -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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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병의 마법에 대한 염원이 부질없어진 건 그날 새벽이었다. 이십 대 시절의 피부 세포가 땀구멍 밑 어딘가에서 솟아나길 기대하며 인터넷을 켜고 오랜만에 대학 친구의 SNS에 들어갔다. 낼모레면 유치원에 들어갈 아들을 안고 입이 찢어지게 웃고 있는 아저씨의 얼굴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평소의 나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게다. "저렇게 볼품없는 오버사이즈 셔츠를 저렇게나 밑위기 긴 바지 속에 넣어 입다니 정말 아저씨가 다 된 거야?' 혹은 이렇게 생각했을 게다. '벌써 저렇게 눈가 주름이라니 아이크림을 바르는 거야, 마는 거야?'

 

그날 새벽은 달랐다.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 얼굴이 아저씨의 얼굴이 아니라 어른의 얼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입가에 새로 생긴 주름을 없애줄 영양크림이나 여섯 살쯤 어려 보이게 만들어 줄 슬림한 더블버튼 재킷이 아닐 것이다. 정말로 중요한 건 자신의 젊음이 아니라 아들의 젊음일 것이다. 아들의 젊을을 위해 넣어둔 펀드 통장의 안정적인 숫자들일 것이다.

 

생애 처음으로 나는 대학 친구의 사진을 보며 삐딱하게 비웃지 않았다. 그리고 노화 방지용 액체가 질펀하게 발린 얼굴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지금 한국의 독신 남자들은 우아하고 젊은 싱글을 넘어서서 동안 콤플렉스와 나르시시즘으로 가득한 도리안 그레이로 진화하고 있는 걸까. 거울을 들여다봤다. 자기애라는 버릇에 도취한 아저씨가 보였다. 어른은 아니었다 -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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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름이 오면 항상 '썸머 홀리데이'를 본다. 클리프 리처드의 노래들을 따라 부르면서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던 내 가슴은 1962년의 아테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멈추고, 이 엉터리 같은 영화의 마지막에 결국 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젊은 날은 모조리 다 서툴고 엉터리 같았는데, 그 엉터리 같아서 즐겁던 젊은 날의 여름이 다시 오지는 않을 것 같아서다 -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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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1은 이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앞으로도 결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tc-1은 일본 경제가 버블 시대의 절정에 올라 있었던 덕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카메라다. 최상급의 부품과 기능을 티타늄으로 만들어진 껍데기 속에 집어넣는 모든 제조 과정이 수작업으로만 이뤄졌기에 제조 원가가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서 미놀타에 tc-1이라는 카메라는 팔리면 팔릴수록 오히려 손해를 안겨주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미놀타의 경영진은 꿈을 꿨다. 버블 시대를 만끽하던 일본인들이 최고의 스냅 사진기를 소유하는 꿈이었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최고의 장인이 만든 최상급의 제품을 살 여력과 무모함과 선망과 존경이 있었다.

 

하지만 버블은 사라졌다. 거품은 가라앚고 가라앉아 바닥으로 내려앉았고 미놀타는 거대한 다국적 기업으로 변모한 소니에 팔렸다. 필름의 시대가 사라진 탓이기도 하겠지만 장사꾼 소니 양반들은 결코 제조 단가를 맞출 수 없는 tc-1의 생산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을 것이 틀림없다.

 

한 시대가 종말을 맞이한 흔적이 티타늄의 갑옷을 입고 내 손에 들려 있다. tc-1은 내게 도호, 닛카쓰, 도에이의 전성기 영화들, 포르쉐에 대적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닛산의 스카이라인 자동차 같은 것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 건너 섬나라의 지금은 사라진 시대, 영혼과 자본을 쏟아부어 자신들의 꿈을 창조해나가던 장인의 시대가 남긴 흔적들이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여전히 아름답게 작동한다 -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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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퀸스의 베이글을 떠올리며 맨해튼의 베이글을 깨물었다. 가만히 생각했다. 어쩌면 베이글 맛은 다르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그사이에 나는 변했다. 나이를 먹었다. 한국과 세계에서 많은 베이글을 먹어봤다. 어쩌면 변한 것은 내 입맛일지도 모른다.

 

그건 마치 파리에 두 번째 갔을 때 봤던 에펠탑이 큰 감흥이 없었던 것처럼, 뉴옥에 두 번째 갔을 때 봤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큰 감흥이 없었던 것처럼, 홍콩에 두 번째 갔을 때 봤던 빅토리아만의 절경이 큰 감흥이 없었던 것처럼, '두 번째 경험'이라는 것이 주는 필연적인 감동의 하향곡선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입맛도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그러고는 더 나은 것을 계속해서 찾아 헤맨다. 그러나 지난 것이 익숙해지는 것을 정말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또 다시 실패한 지난 연애를 떠올렸다. 그 친구는 "너는 내가 항상 나아지기만을 바라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전 연인보다 나은 연인을 바랐다. 전 연인보다 나은 연인이 되라고 무의식적으로 강요하며 연애를 했다. 그렇지 않다면 나에게 너는 필요가 없다고 말없이 짓누르고 짓눌렀다. 그는 나에게 질려서 떠났을 것이다.나는 푸드플라이로 시킨 베이글을 깨물며 생각했다. 퀸스의 베이글처럼 맛이 있지는 않지만 이건 꽤 괜찮은 베이글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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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종종 에비앙을 산다. 냉장고에 가득 차 있는 에비앙을 보면서 잠깐의 허영에 빠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에비앙이 그렇게 맛있는 물은 아니다. 목으로 넘길 때의 부드러움은 좋지만 어쩐지 텁텁하고 비릿하기도 하다.

 

우리가 삼다수를 들이킬 떄 느끼는 강렬하고 칼칼한 시원함도 부족하다. 이 미네랄이 가득한 석회수가 한국적인 물맛은 아니라고 표현하는 것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꼭 실속으로만 소비를 하는 동물은 아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아주 약간이라도 일상의 허영이 필요하다. 당신 역시 그럴 것이다. 매달 음식을 아라비아 핀란드 접시에 담아 먹는 당신도, 인스턴트커피를 웨지우드의 잔에 따라 먹는 당신도, 유니클로 재킷에 에르메스의 스카프를 두르는 당신도, 일상의 작은 허영이 주는 자기만족의 기쁨을 알 것이다. 그런 허영의 삶을 보다 부드럽게 굴러가게 만드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작은 허영을 자신에게 허락하라 -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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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라는 존재들은 사실상 아이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경험치와 나이만 늘 뿐, 우리 모두 열몇 살짜리 아이들로부터 그리 큰 내적 성장을 이룬 존재는 아니지 않은가. 그걸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진다.

 

장난감을 구입하면서 굳이 "제 조카 주려고요"라는 변명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고, 사람들을 집으로 초청한 다음 "아이고 제가 어릴 적에 아버지 사랑을 좀 덜 받아서 그 보상 심리로 이 장난감들을 사는 거니까 웃기다고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애꿏은 셀프 정신 분석을 중얼거릴 필요도 없다.

 

나는 그저 새 신발을 사듯, 새 코트를 사듯, 새 책을 사득 장난감을 산다. 내가 가장 아끼는 장난감 중에는 옆에서 박수를 치면 혼자서 노래를 하는 기즈모 인형, 70년대에 생산된 츄바카와 베오울프 피규어, 80년대에 생산된 고지라 모형 등이 있다. 잡지 촬영용으로 구입해 집어삼킴 '퍼시픽 림'의 로봇 피규어도 빼놓을 수 없겠다. 창고에는 아직 조립하지 않았거나 반쯤 조립한 건프라가 거의 2미터 정도 쌓여 있다 -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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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외롭게 거실에 앉아서 모든 쓸모없는 것들의 가격을 쓸모 있는 것들과 호기롭게 비교하기 시작했다. '도쿄에서 구입한 장식품들로는 근사한 소파를 구입할 수도 있었겠군. 베를린에서 구입한 사진집들로는 데스크톱을 장만할 수도 있었겠지. 파리에서 구입한 1920년대 아기 얼굴 마네킹으로는 저렴한 제습기 하나쯤은 살 수 있었을 테고, 테리 리처드슨 피규어? 몇 달 치 밥값은 충분했을 거야'

 

맙소사. 스마트폰 계산기를 두들기던 나는 어떤 현현의 순간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나는 이 모든 쓸모없는 것들을 사 모으느라 몇 달 치 월급을 낭비해온 것이다. 반성과 후회는 잠깐이었다. 이내 나는 극세사 천으로 테리 리처드슨의 얼굴을 닦으며 왠지 모를 희열에 흽싸였다.

 

그건 쓸모없는 것들이 주는 어떤 정신적 고양 덕분이었다. 물론 우리에게는 쓸모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 에어컨과 티브이와 냉장고와 식기세척기와 자동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쓸모 있는 것들로만 둘러싸인 삶이란 얼마나 냉정하고 차가울 것인가. 삶이란 게 원래 수많은 쓸모없는 것들과 몇몇 쓸모 있는 것들에 의해 굴러가는, 아주 쓸모없기도 하고 쓸모 있기도 한 것 아니던가? -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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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루에 사용하는 브랜드의 수를 모두 세어보기로 했다. 카운트 시작. 아침에 일어나면 네스프레소 커피(1)를 마신다. 물은 에비앙(2), 오랄비 칫솔(3)에 센소다인 치약(4)을 짜서 이를 닦는다.

 

아비노 바디워시(5)로 샤워를 하고 아베다 샴푸(6)로 머리를 감는다. 이솜 세안제(7)로 세수를 하고 키엘 수분크림(8)을 바른다. 무인양품 수건(9)으로 머리를 말리고 갸스비 왁스(10)를 바르면 준비 끝이다. 이미 열 개다.

 

계속 세어보자. 아메리칸 어패럴 속옷(11), 유니클로 히트텍(12), 아크네 스웨트 셔츠(13), 꼼데가르송 바지(14), 라프리몬스 장갑(15), 칼하트의 내피(16), 헬무트 랑 코트(17), 생로랑 가방(18), 메종 키즈네 스니커즈(19), 담배는 던힐(20)이다. 회사에 도착하면 LG 컴퓨터(21)를 쓴다. 아이폰(22)과 마샬 헤드폰(23)도 빠뜨릴 수 없다.

 

이제 열심히 일하고 귀가. 택시 계산은 현대카드(24)로 한다. 잠자기 전에 리스테린(25)으로 가글을 한다. 딥티크의 향초(26)를 잠깐 켠 뒤 세미콜론(27)에서 나온 책을 좀 읽다가 공기청정기 벤타(28)를 켜고 잠이 든다. 이게 끝이 아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도 브랜드다. 램프도 브랜드다. 나는 브랜드 속에서 살아간느 게 아니라 내 인생 자체가 브랜드인 셈이다 -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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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나는 라면을 끓였다. 그리고 질 좋은 등심을 투척했다. 지방질이 있는 고기를 씹을 때 나는 미슐랭 스타 식당이 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서는 20대 자취 생활의 궁핍함이 떠올랐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 등심은 좋은 등심이었다. 결코 라면에 넣어서는 안 되는 등심이었다. 이건 마치 나의 지난 관계들 같았다.

 

친구나 연인과의 관계가 힘들고 복잡해질 떄마다 나는 그 관계에 등심을 넣고 대하를 넣고 랍스타를 넣었다. 어떻게든 일상적인 국물 맛을 살려보고자 안감힘을 썼다. 통하지 않았다. 무엇을 넣어도 멀어지는 관계는 멀어졌다. 식고 불은 라면처럼 관계도 결국 인스턴트로 끝이 났다. 결국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라면은 라면이었다. 그랬다 -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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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뉴트리아를 철장에 넣으려다 가져온 당근을 하나 던져줬다. 앞다리가 잘리고 하반신이 올무에 걸린 채로 뉴트리아는 허겁지겁 당근을 먹어치웠다. 나는 어떤 존재가 그토록 무언가를 비참할 정도로 급히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곧 죽을 것을 예감하고도 생존에 대한 욕망을 뿌리치지 못해 애절하게 목숨을 이어가는 존재를 이처럼 눈 앞에서 똑똑히 본 적이 없다. 선생은 뉴트리아를 철창에 넣고 스쿠터에 시동을 걸었다.

 

"사진 잘 나왔는가 모르겠네. 잘 나오면 책 하나 보내주소" 선생은 스쿠터를 달려서 늪을 둘러싼 보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나는 선생이 덫에 손수 달아놓은 고무 패킹을 떠올렸다. 그리고 뉴트리아를 가둬놓은 철창 속에 던져놓은 갖은 채소와 당근을 생각했다. 그는 마리당 3만 원을 받기 위해 석궁과 골프채로 이 영문 모를 설치류의 머리를 내려치는 사냥꾼이 아니다.

 

늪을 지키기 위해 정보구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한 동물을 포획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적어도 뉴트리아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덫에 고무 패킹을 다는 사람이다. 나는 선생 앞에서 뉴트리아의 생존권에 대한 인텔리적인 교화 따위 늘어놓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는 우리가 벌여놓은 일을 묵묵히 대신 해결하는 사람이다 -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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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법을 폐지해달라는 청원에 70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 서울시청 앞에서 난민법 폐지 집회를 열 계획이라는 글도 올라왔다. SNS는 좌우, 보수와 진보 관계없이 난민에 대한 근심과 분노로 넘쳤다. 온갖 사진들을 짜집기한 가짜뉴스는 이미 퍼질대로 퍼졌다.

 

그 와중에 법무부는 예맨을 무비자 입국 불허 대상국에 포함하면서 "경찰 당국과 긴밀히 협력해 순찰을 강화하고 법죄를 사전에 예방하겠다"고 했다.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은 난민을 일종의 '잠재적 가해자'로 이르게 프레임화해버린 셈이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정우성 씨는 한 포럼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과 난민의 인권, 그중 어느 하나를 우선시하자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무비자 입국 불허 대상국에 예멘을 포함한 것에는 "이런 식으로 난민의 입국을 제어하는 것은 난민들이 어느 나라에서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위험성이 내포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는 이 인도주의적 말에 대해서도 비난이 쏟아졌다. 난민을 국경으로 한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하면 한국은 혹여나 혹시나 혹 벌어질지 모른다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가상의 범죄들로부터 완벽한 청정국이 되는 것일까.

 

우리는 종종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존재하는 불안과 공포때문에 어떤 대상을 미리 제거하거나 금지해달라고 국가에 요청한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국가는 이런 상상의 불안을 잠재우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언제나 제거와 금지를 택해왔다.

 

정글짐을 제거하는 것으로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글짐과 흙이 사라진 놀이터의 아이들이 다른 국가의 아이들보다 안전하게 자란다는 보장은 없다. 한국의 아이들은 여전히 정글짐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은 더 많은 정글짐을 포용할 수 있는 국가다 -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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