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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정우 책 주요 문장 '걷는 사람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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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책 주요 문장 '걷는 사람 하정우'



매년 1월 1일이 되면 신년 계획에 항상 포함하는 것이 독서다. 작년 이맘 때에도 "올해는 기필코 독서를 많이 하자"며 1~2월만 해도 열심히 책을 읽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소홀했다.


2018년이 가기 전 1권이라도 더 읽어야 할 것 같아 인터넷 도서 쇼핑몰에서 고른 게 하정우 책 '걷는 사람 하정우'로 배우 하정우 씨가 쓴 에세이다.


'걸어서 출퇴근하는 배우, 하정우'라는 띠지를 보고 한때 걸어서 출퇴근했던 오래전 나의 모습이 생각났기에 책을 펼치게 됐다.


영화 촬영 장소로 걸어서 간다는 하정우 씨는 평소라면 걷기 힘든 1만 보를 넘어 무려 1만 6천 보를 걸어간다고 한다.


지금의 내 체력에 아침에 1만 보를 걷는다면 하루종일 피곤에 시달려 업무를 볼 수 없을 텐데 거기에 6천 보까지 더 걷는다니 보통 사람의 체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평소에 걷기 모임을 만들어 동료들과 함께 핏빗으로 연결해 함께 걸어다닌다고 한다. 쉬는 기간에는 저 멀리 하와이를 가서 1만 보가 아닌 무려 10만 보를 걸었다고 하는데 1만 보에 약 7~8km라고 친다면 거의 80km를 걸은 거나 다름 없기에 그 정신력과 끈기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영화 속 배우 하정우에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먹방이다. 그는 평소에도 다양한 요리를 직접 만들어서 먹는다고 하는데 하정우 책 '걷는 사람, 하정우'에서는 그만의 요리 레시피를 소개해주기도 한다.


그 중 가장 특이했던 요리 레시피는 향신료인 고수를 넣은 라면이다. 그 내용을 보자마자 집 근처 마트에 가서 고수를 사서 라면에 넣어먹었는데 뭔가 중독성이 있는 특유의 향으로 가끔씩 해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에너지를 얻는 데 있어 걷기만큼이나 먹기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하정우 씨의 말을 듣고 평소 내 식습관에 대해 생각했다.


매일 식당이나 배달 음식만을 먹었던 지난 날을 떠오르면서 요리에 한 번 도전해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정우 씨는 기본 식재료로 조기, 돼지고기, 삼겹살 목살, 국거리용 소고기, 대파, 감자, 양파 등을 냉장고에서 떨어지지 않게 신경을 쓴다고 한다.


또한 대파, 브로콜리, 파프리카처럼 수분이 적은 채소를 적절한 크기로 잘라 냉동실에 보관하고 바게트 빵처럼 한 번에 다 먹어치우기 힘든 음식은 썰어서 냉동보관한다는 등 요리에 관한 여러가지 팁도 알려주기에 책을 읽는 동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정우 책 '걷는 사람 하정우'를 통해 걷기와 요리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겪었던 에피소드나 인생관에 대해 말해준다.


미술 전시회에서 혹평을 받았던 이야기나 감독 데뷔 후 흥행에 참패했던 것에 낱낱이 언급하면서 그 속에서 깨달았던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데 항상 도전하는 그의 모습이 멋져보였다.


하정우 책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으면서 몇 개월간 무기력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루 7~8시간 취침을 하는데도 매일 피곤해했던 지난 날은 수면이 부족한 게 아니라 체력이 부족했던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2019년 신년 계획으론 꾸준한 운동과 걷기를 해보려고 한다. 처음부터 하루 1만 보를 걷기란 무리지만 조금씩 조금씩 걷다 보면 체력이 늘어날 테고 그만큼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질테니 말이다.


책을 읽고 난 후 오늘은 마라도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송악산 둘레길을 걸었다. 책 '걷는 사람 하정우'에서 하정우 씨가 느꼈던 것처럼 나 역시 걷기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가질 수 있을까 둘레길을 걸었는데 처음이라 힘들었지만 한 바퀴를 돌고 나오는 길에 지치다기보다는 에너지가 차오르는 듯한 상쾌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내일 아침부턴 20~30분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볼까 한다. 1월 1일인 어제 설이와 함께 산책한 코스는 걷기도 편하고 공원에 운동기구도 있으니 현재 나에게 있어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올해는 지난 날과 같이 신년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이라도 노력해보고 싶다. 지금보다 나은 삶, 더욱 재미있는 인생을 위해 하정우 씨처럼 걸어봐야겠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내 발사이즈는 300밀리미터다. 발이 워낙 크다보니 주로 이태원이나 해외에서 맞는 신발을 구해야 해서 약간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왕발'이 좋다. 가끔 내 큰 머리에 어지러운 생각과 고민이 뭉게뭉게 차오르기 시작할 때면, 그 생각이 부풀어 머리가 더 무거워지기 전에 내 왕발이 먼저 세상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간다. 머리 큰 내가 발까지 큰 건 분명 축복이다.


정말 발사이즈부터 타고났기 때문일까?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하고 잘 걷는다. 휴식 시간뿐만 아니라 촬영장에서도 걷고, 아침에 눈뜨면 걷고,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돌아가는 길에도 걸어서 집에 간다.


사람들은 이동거리를 말할 때 흔히 차로 몇 분, 혹은 몇 킬로미터 간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내가 이동거리를 말할 때 쓰는 단위는 '편도 몇 보'가 되었다. 영화 '아가씨'를 찍을 때는 영화사가 합정역에서 상수역 사이쯤에 있었는데, 나는 강남에서부터 마포까지 거의 매일 걸어다녔다. 출근길 편도 1만 6천 보, 이 정도면 상쾌하다 - 7


사람들은 인생살이에서 어떤 기대와 꿈을 품고 살아간다. 나중에는 형편이 나아지겠지, 세월이 지나면 다 괜찮아지겠지, 지금 이 순간을 견디면 지금보다 나은 존재가 되어 있겠지. 어릴 때는 이런 희망과 꿈이 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지만, 나이들수록 그 폭은 조금씩 줄어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고 뉘우치며 포기하는 단계까지 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길 끝에서 느낀 거대한 허무가 아니라 길 위의 나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그때 내가 왜 하루하루 더 즐겁게 걷지 못했을까. 다시 오지 않을 그 소중한 시간에 나는 왜 사람들과 더 웃고 떠들고 농담하며 신나게 즐기지 못 했을까. 어차피 끝에 가서는 결국 아무것도 없을 텐데.


내 삶도 국토대장정처럼 길 끝에는 결국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 이름 붙여진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하루 좋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뿐일 테다 - 25


만약 나쁜 기분에 사로잡혀서 지금 당장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태라면 그저 나가서 슬슬 걸어보자. 골백번 생각하면 고민의 무게만 늘리고 나쁜 기분의 밀도를 높이는 대신에 그냥 나가서 삼십 분이라도 걷고 들어오는 거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기분 모드가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나의 기분에 지지 않는다. 나의 기분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믿음, 나의 기분으로 인해 누군가를 힘들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 걷기는 내가 나 자신과 타인에게 하는 약속이다 - 32


아니 대체 하와이까지 와서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뭐를 위해서 내가 이렇게 가고 있는 거지? 10만 보를 걸어서 뭐하자고? 근본적인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걷자면 계속 걸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걷는 목적을 잃어버렸다.


그 당시에는 다들 이런 고통과 회의에 푹 잠긴 상태로 계속 걸어서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흥미롭게느껴진다. 하와이에 왔으니 10만 보 걷기에 도전해보자며 다 함께 목표를 설정한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걷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그 '으미'란 걸 찾으면서 포기하려고 했을까? 어쩌면 고통의 한복판에 서 있던 그때, 우리가 어렴풋하게 찾아헤맨 건 '이 길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애초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었다고, 이 길은 본래 내 것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스스로 세운 목표를 부정하며 '포기할 만하니까 포기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하고 싶었던 거다. 이것은 꼭 걷기에 관한 얘기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유난히 힘든 날이 오면 우리는 갑자기 거창한 의미를 찾아내려 애쓰고,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의미 없다', '사실 처음부터 다 잘못됐던 것이다'라고 변명한다. 이런 머나먼 여정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최초의 선택과 결심을 등대 삼아 일단 계속 가보아야 하는데, 대뜸 멈춰버리는 것이다 - 78


한참을 걷다 집으로 돌아와 패딩을 벗으면 어느새 셔츠가 땀에 흠뻑 젖어 있다. 한겨울에 이렇게 땀이 많이 날 수 있는지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것이다. 젖은 옷들을 벗어서 세탁기에 넣어놓고 반신욕이나 족욕을 할 준비를 한다. 이때 절대 빠져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뜨거운 코코아 한 잔이다. 땀을 뺀 몸은 더없이 상쾌하고, 달콤한 코코아는 꿀맛이다. 적당히 뜨거운 음료가 몸을 노곤하게 만들면서 안정감이 찾아온다. 어떤 생각을 해도 마음이 평화롭고 자유롭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도 같다. 그저 걷기만 해도 매일 이렇게 완벽한 안정감을 경험할 수 있는데 어떻게 걷지 않을 수가 있을까? - 105


'군도'가 개봉한 뒤 대중들의 반응을 직면하자 나는 그 시간이 몹시 후회되기 시작했다. 내가 육체적 고통에 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칠 듯이 화가 나서 감정을 추스르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고생해서 찍은 영화를 관객들이 충분히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순수하게 나 자신을 향한 자책과 분노였다. 촬영할 때의 육체적 고통은 개봉 후에 관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고통과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지금도 일 년에 두세 편씩의 출연작이 개봉하지만, 기대한 만큼 관객들의 반응을 얻지 못할 영화는 언제나 뼈아프다.


개봉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오점은 시간을 되돌려 바로잡을 수가 없다. 내가 연기한 캐릭터는 영화 속에서 영원히 그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고된 촬영 현장의 요건들이나 그 시절 나의 개인적인 어려움은, 나의 얼굴로 영화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캐릭터와 그 영화를 볼 관객들 앞에 작은 핑곗거리도 될 수 없다 - 113


나도 좋은 사람들과의 술자리를 즐기는 편이지만 새벽까지 진탕 술을 마시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정신과 생활의 리듬을 유지하기 윟나 결단이냐 하면 그건 아니고, 사실 나 같은 경우는 그냥 '졸려서'다. 매일 틈만 나면 걸어서인지 나는 한없이 반갑고 행복한 사람들을 만나도 자정 무렵이면 너무 졸립다. 더 있고 싶지만 '난 틀렸어'라는 말을 남기고 귀가한다. 이러다보니 '신데렐라'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다가 사고를 치거나 애먼 곳에 가서 문제될 일을 만들 수가 없게끔 몸이 세팅되어 있는 것이다. 자정이 가까워오면 '신데렐라'에겐 즉각 신호가 온다. 밀려오는 졸음에 눈을 끔벅거리다가 나는 술자리에 유리구두 대신 그리움을 남겨두고서 집까지 걸어서 돌아온다. 적당히 기분 좋은 정보의 술기운과 밀려오는 졸음이 걸음을 재촉한다. 집에 오면 씻고 쓰러져 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새 나라의 어린이'처럼 반짝 눈을 뜬다.


일탈도, 치기도 없는 약간은 재미없는 삶이라고 누군가는 말할지 몰라도, 나의 이런 하루가 나는 마음에 든다. 지금 여기서 동이 터올 때까지 매일 축배를 들기엔 아직 나는 갈 길이 한참 먼 사람이기 때문이다 - 121


당신이 만약 혼자 사는데 피자를 좋아한다면, 피자 한 판을 배달시켜서 노상 남기기보다는 집에 또띠아를 좀 사다두면 좋겠다. 또띠아에 토마토페이스트를 살살 펴바르고 다진 양파를 듬뿍 올리고 치즈를 뿌린다. 냉장고르 스캔해서 버섯, 소시지, 살라미 등 맛깔나는 토핑을 추가해 오븐에 오 분이나 십 분 정도 구우면 씬피자가 탄생한다.


떡 벌어진 한 상을 차려보겠다고 욕심부리지 말고 일단 내 입맛에 맞는 딱 하나의 먹거리만 만들어보면 어떨까? 왜 반찬이 딱히 없을 때에는 감자조림만 만들어 먹어도 너무 맛있지 않나? 갓 만든 따뜻한 감자조림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감동적이다. 육수를 우리고 요리할 시간이 없을 때는 시중에 파는 다시팩으로 육수르 내고, 냉장고에 있는 채소들을 얼렁뚱땅 넣어서 끓이기만 해도 국이 완성된다.


맛을 보고 별로면, 다음에 요리할 때 뭘 더 추가하거나 덜어낼지 생각해보면 된다. 요리가 좋은 건 이번 한끼를 애매하게 실패했다 해도, 반드시 만회할 다음 끼니가 돌아온다는 거니까 - 143


때론 걷다가 '그만 걸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치솟기도 하고, 걷기도 전에 '오늘은 나가지 말까?' 하는 유혹이 뻗칠 때도 있다. 하지만 이 길을 다 걸었을 때의 기쁨과 보람을 알기 때문에 계속 걷는다. 그리고 걷기를 방해하는 이런 생각들은 곧 흘러가버릴 것임을 나는 안다. 한 발만 떼면 걸어진다.


그러니 도무지 꼼짝도 하고 싶지 않은 날 아침엔 일단 일어나 한 발, 딱 한 발만 떼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한 걸음이 가장 무겁고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이내 깨닫게 될 것이다.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온갖 고민과 핑계가 나를 주저앉히는 힘보다 내 몸이 앞으로 가고자 하는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 158


나는 사람이 그다지 강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여러 가지 요인들로 불안정해지기 쉬운 동물이다. 마치 날씨처럼 매일 다른 사건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우리의 몸과 마음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기란 쉽지 않다. 변화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작은 물곁에 배가 휩쓸려가서는 안 되므로 닻을 단단히 내려둘 필요가 있다.


나에게 일상의 루틴이 닻의 기능을 한다. 위기상황에서도 매일 꾸준히 지켜온 루틴을 반복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한 정신과 의사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환자들에게 그게 무엇이든 루틴을 정해놓고 어떤 기분이 들든 무조건 지킬 것을 권한다 - 164


나는 생각들을 이어가다가 지금 당장 답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면, 그냥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는 편이다. 살다보면 답이 없다는 말을 중얼거리게 만드는 문제들을 수없이 만난다.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당장 해결하고 싶은 조급함 때문에 좀처럼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어쩌면 그 순간 우리는 답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질질 끌려가고 있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답이 없을 때마다 나는 그저 걸었다. 생각이 똑같은 길을 맴돌 때는 두 다리를 직접 걸어나가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그러니 힘들 때는 대자로 뻗어버린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걷는 사람의 이미지를 머리에 떠올려보면 좋겠다. 죽을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리에겐 아직 최소한의 걸을 만한 힘 정도는 남아 있다.


그리고 걷기에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태엽을 감아주는 효과가 있어, 우리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더 버티고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준다. 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 오늘도 쉽지 않은 하루였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오늘도 기도하듯 다짐하듯 말해본다. "힘들다, 걸어야겠다" - 166


어떤 사람은 말끝마다 세상이 꺼질 듯이 한탄하고 한숨을 쉰다. '아휴 죽겠네', '못살아, 정말', '짜증나' 같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모든 사안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인 대답부터 하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 어떤 제안을 하면 '그건 안 돼', '난 못해' 같은 말로 자신을 방어한다. 할 수 있을지 찬찬히 따져보고 자신의 능력치를 판단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냥 말버릇이다.


말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태도는 한 사람의 생각과 성격을 보여주는 척도인 동시에, 그 말을 들은 상대방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숨과 짜증과 불가능으로 점철된 말은 듣는 사람을 맥빠지게 하고, 상황이 정말 최악이라는 느낌을 전염시킨다.


말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우리는 매일같이 체험하고 있다. 일부 인터넷 공간에 씹다 버린 껌처럼 나뒹구는 악플과 게시글들을 보라. 또 누군가를 깎아내리며 거친 욕설을 한다. 그런 말들은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것을 우연히 읽게 된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준다.


불쾌한 느낌을 전염시키고, 세상이 이토록 냉혹하니 언제라도 나 역시 그런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까지 유발한다. 그런 잔인한 악플을 쓰고 익명성 뒤에 숨어서 타인을 함부로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괴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 187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남 탓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물론 그간 쏟아부은 노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드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나만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작고 얕은 마음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불만을 가지고 책임을 밖으로 돌릴수록 나에게 남는 것은 화나고 억울한 마음뿐이다. 그 상태는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러니까 남 탓은 나를 더욱 외롭게 쓸쓸하게 만든다.


일의 결과에 상관없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이지 않던 연결에 대한 감각이 살아남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상황에 내가 연결돼 있고, 그 덕분에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감사는 고립된 상태에서 벗어나 나를 충만하고 풍요로운 상태로 이끈다. 어쩌면 감사도 연습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연결고리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처럼 쓴다. 거기 당신, 늘 그 자리에 있어주어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192


독서와 걷기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저는 그럴 시간 없는데요'라는 핑계를 대기 쉬운 분야라는 점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하루에 20쪽 정도 책 읽을 시간, 삼십 분 가량 걸을 시간을 누구에게나 있다. 핏빗을 통해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가 서로를 격려하며 매일 꾸준히 걸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독서도 함께해 보기로 했다.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혹은 맥주나 막걸리를 마시면서 전반적으로 책이 어땠는지, 책 내용 중 내 생각과 비슷한 부분을 발견했을 때는 신이 나서 떠들었고, 어떤 책은 자기와는 영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소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미 잘 안다 믿었던 서로에 대해 좀더 이해하게 되었다.


책을 함께 읽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안다고 믿었던 서로의 마음속을 더 깊이 채굴하는 것과도 같았다.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어쩐지 더 좋은 삶을 살고 싶은 마음과 함께, 서로의 일과 삶에 대한 응원의 마음이 차올랐다 - 206


누군가 내게 "하정우씨, 배우만 하세요"라고 말할 때 나는 예전에는 상처받았지만, 앞으로는 상처받지 않으려 한다. 그건 내가 배우로서는 대중들에게 꽤 친숙하고 그럭저럭 잘해왔다는 뜻 아닌가. 감독 하정우는 배우 하정우에게 빚졌지만, 언젠가는 감독 하정우가 배우 하정우에게 그 빚을 갚을 날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배우 하정우는 지금까지 많은 행운과 사랑을 누렸고 순탄한 길을 걸어온 편이지만, 스무 살에 연극무대에 오른 이후 서른 무렵 10년 만에 간신히 빛을 본 사람이기도 하다. 그에 비하면 영화감독 하정우는 이제 데뷔한 지 고작 몇 년밖에 안 된 신출내기다. 감독으로서의 성공과 실패를 운운하기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 229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위기와 절망 속에 있을 때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나는 떄로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노력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한다. 어쩌면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도 모른 채 힘든 시간을 그저 견디고만 있는 것을 노력이라 착각하진 않는지 가늠해본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고만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입을 크게 벌리고 부동자세로 감이 떨어지길 계속 기다리자니 턱이 아프고 온몸이 저리다. 간절히 기다리는 감은 떨어질 기미도 안 보이고, 나무에서는 온갖 벌레만 내려와서 약 올리듯 몸을 기어다닌다.


근질거리고, 당연히 고통스럽다.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다. 어마어마한 고통을 감당하면서 분명 어떤 노력을 하긴 했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들, 이를테면 나무 위로 올라가서 나뭇가지를 자르든, 온 힘을 다해 나무둥치를 흔들든, 마을로 내려가 장대를 가져와서 감을 따든, 그 시간에 다른 일들을 시도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고통받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곧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혹시 내가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는 건 아닌지 수시로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살아가면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해온 노력이 그다지 대단한 게 아님을 깨닫는 순간들을 수없이 맞게 될 것이다. 정말 최선을 다한 것 같은 순간에도, 틀림없이 그 최선을 아주 작아지게 만드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엄청난 강도와 밀도로 차원이 다른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새로운 날들이 기다려진다 - 285


살면서 불행한 일을 맞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이란 어쩌면 누구나 겪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에서 누가 얼마큼 빨리 벗어나느냐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사고를 당하고 아픔을 겪고 상처받고 슬퍼한다. 이런 일들은 생각보다 자주 우리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 상태에 오래 머물면 어떤 사건이 혹은 어떤 사람이 나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지경에 빠진다. 결국 그 늪에서 얼마큼 빨리 탈출하느냐, 언제 괜찮아지느냐, 과연 회복할 수 있느냐가 인생의 과제일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든 지속하는 걷기, 직접 요리해서 밥 먹기 같은 일상의 소소한 행위가 나를 이 늪에서 건져내준다고 믿는다. 내게 주어진 재능에 겸손하고, 이뤄낸 성과에 감사하자. 걸으며, 밥을 먹으며, 기도하며 나는 다짐해본다.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든 한 발 더 내딛는 것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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