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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영하 작가 작품 여행의 이유 구절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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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 작품 여행의 이유 구절 모음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이 방영되기 전부터 작품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으면서 나름 김영하 작가의 팬이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슷한 느낌에 술술 읽히는 그의 문장에 매료됐었는데 '알쓸신잡'에서 보여줬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본받고 싶기도 했다.

 

온라인 도서 쇼핑몰을 둘러보다 신간 에세이인 '여행의 이유'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곧바로 결제를 진행했는데 아쉽게도 초판이 아니었다. 초판 1쇄에 한 해 양장본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았는데 미리 구매하지 못해 아쉬웠다.

 

김영하 작가의 작품 '여행의 이유'는 출간되자마자 온라인 도서 쇼핑몰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는데, 책에서는 저자가 그동안의 여행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내용을 9개의 주제로 풀어내 여행 블로그를 운영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기도 했다.

 

작품 '여행의 이유'를 읽는 동안 김영하 작가가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경험에 대한 공감보다는 블로그를 통해 제주도 관광지나 명소를 소개할 때 어떤 식으로 작성해야 읽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이에 대해 김영하 작가는 '완벽한 계획으로 세워진 여행'이 아닌 '이런저런 실패담이 구성된 이야기'가 재밌을 것이라고 말했다. SNS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지 않는 완벽한 여행'을 추구하면서 핫플레이스만을 찾아가지만, 저자의 말대로 여행이란 우연히 만난 행운과 경험이 있어야 기억에 더욱 오래 남지 않을까?

 

김영하 작가는 작품 '여행의 이유'에서 어린 시절부터 한 곳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여러 지역으로 이사를 다녔음을 밝히면서 그렇기에 여행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어릴 적에 제주도로 이주한 후 7~8번이나 집을 옮겨다녔고 여행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작가와의 공통점을 발견한 것 같아 책을 읽는 동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책에서는 자신이 출연했던 방송 프로그램인 '알쓸신잡'에 대한 부분에서는 일인칭이 아닌 삼인칭 시점에서 바라본 여행 모습에 대한 생각을 언급한다.

 

평소 블로그에 쓸 주제를 찾기 위해 제주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도 정작 내 모습이 아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풍경만을 카메라에 담곤 하는데 진정한 여행기를 남기려면 그 콘텐츠에 주인공인 나 자신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베스트셀러 작품 '여행의 이유'에서는 저자 김영하 작가가 지난 2005년 글을 쓰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푸둥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고 추방당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신이 다녔던 여러 나라에서의 에피소드를 단순히 글로 풀어낸 게 아니라 고전문학에 나온 내용을 인용하여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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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기 위해서라면 무엇보다 많은 책을 읽고 기록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다시 한 번 느꼈는데 이외에도 평소 여행을 좋아하거나 혹은 나와 같이 블로그를 통해 여행기를 작성하는 분들이라면 아래 구절을 참고해 현 베스트셀러 1위인 '여행의 이유'를 읽어보자.

 

 

※기억하고 싶은 구절

 

 

게이트에서 도착한 우리는 그후로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흔치는 않겠지만, 겪어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의외로 최악의 기분은 아니었다. 여행은 아무 소득 없이 하루 만에 끝나고, 한 번 더 중국을 왕복하고도 남을 항공권 값을 추가로 지불했으며, 선불로 송금해버린 숙박비와 식비는 아마도 날리게 될 것이 뻔했지만, 난생처음으로 추방자가 되어 대합실에 앉아 있는 것은 매우 진귀한 경험인 만큼, 소설가인 나로서는 언젠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될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여행에 치밀한 계획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이 너무 순조로우면 나중에 쓸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나라를 가든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너무 고심하지 않는 편이다. 운 좋게 맛있으면 맛있어서 좋고, 대실패를 하면 글로 쓰면 된다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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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주문에서 실패를 줄이고 싶다면 모든 분류의 가장 위에서부터 고르면 되고, 재료로는 닭을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 겉에 뭐가 발라져 있든, 무엇에 재웠든, 속에는 우리가 아는 그 닭고기가 있다. 그러나 자기 여행을 소재로 뭔가를 쓰고 싶다면 밑에서부터 주문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떄론 동행 중에서 따라 시키는 사람이 생기고, 그 인상적인 실패 경험에 대해 두고두고 이야기하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그걸 글로 쓸 것이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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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의 플롯'으로 구축된 이야기들에는 대부분 두 가지 충위의 목표가 있다. 주인공이 드러내놓고 추구하는 것(외면적 목표)과 주인공 자신도 잘 모르는 채 추구하는 것(내면적 목표), 이렇게 나눌 수 있다.

 

'추구의 플롯'에 따라 잘 쓰인 이야기는 주인공이 외면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라 내면적으로 간절히 원하던 것을 달성하도록 하고, 그런 이야기가 관객에게도 깊은 만족감을 준다.

 

'추구의 플롯'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대체로 주인공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는 것은 거꾸로 여행기가 '추구의 플롯'으로 쓰일 수 있고, 쓰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는 명확한, 외면적인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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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렵지만 1987년까지는 50세 이상만 관광용 단수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이후 40세, 30세로 연령이 낮아지다가 1989년에 이르러서야 연령제한이 폐지되었다.

 

1989년까지는 일가족의 여권 신청도 제한을 받았는데, '해외 도피 우려'가 그 이유였다. 나는 군 미필자여서 아버지 친구 중의 한 분이 신원 보증을 서야만 했다. 만약 내가 귀국하여 입대하지 않으면 그분이 엄청난 벌금을 물게 된다고 했다.

 

소양 교육이라는 것도 이수해야 했다. 한국자유총연맹의 전신인 한국반공연맹이나 한국관광공사에 가서 '공산권 주민 접촉시 주의사항' 같은 주제의 교육을 받았다. 주된 내용은 해외에서 북한 사람을 만나면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면 납치되어 북한으로 끌려간다, 북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해외에서 남한을 비판하는 동포들도 조심해야 하는데, 그들도 실은 북한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식이었다(이 소양 교육은 1992년에야 폐지되었다)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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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둥공항에서 추방되던 그 순간에 나는 자연스럽게 처음 상하이에 도착했던 스물세 살 무렵을 떠올렸고, 그때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이 변했는가를 생각했고, 몇몇 기업가와 정치가가 구상했던 그 우스꽝스런 '사회주의 제대로 알기' 패키지여행이, 어떻게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내 인생을 바꾸었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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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의 나라 중국에 가서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발견하겠다던 우리 둘의 생각은 '추구의 플롯'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른바 '외면적 목표'였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위한 공식적인 이유, 프로도의 절대반지 같은 것, 그렇다면 우리 둘에게 숨겨진 '내면적 목표'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고, 천안문 사태가 인민해방군의 탱크로 진압되는 것도 보았다. 불과 십 년 전에 광주 시민의 항거가 바로 그런 식으로 짓밟혔던 것을 아는 우리로서는 여행 전에 이미 중국에 대한 희망을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여행은 주식투자자의 손질매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 친구는 대기업에 취업하고,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쓰기 시작한 소설이 나의 평생의 업이 되었다 -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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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찾은 중국에서 추방되어 집으로 돌아온 그는 오히려 안온함을 느꼈다. 그는 비로소 오래 미루던 소설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다. 아내는 집 밖으로 절대 나가선 안 된다고 다짐을 두엇는데 그것이야말로 그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이었다.

 

비밀의 벽장을 열고 자신만의 세계로 내려가는 나니아처럼 그 역시 자신만의 열어젖힐 수 있는 문을 열고 오랫동안 중단했던 소설 속으로, 매번 낯설지만 끝내는 그를 환대해주는 비자 따위는 요구하지 않는 그 나라로 빨려들어갔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과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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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다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스프레드시트로 표를 하나 만들어 소설을 쓸 때마다 사용한다.

 

비중이 있는 인물이면 그의 외모부터 습관, 취향까지 다양한 항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해본다. 마치 앙케트조사와 비슷하다. 역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인물의 내면이다. 윤리적 태도, 성에 대한 관념, 정치적 성향 등, 십여 개의 항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하다보면 인물에 대해 좀더 뚜렷한 윤관이 그려진다.

 

그런데 인물의 내면 부분에서 내가 제일 고민하게 되는 항목은 '프로그램'이다. 노아 루크먼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인물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종의 신념'으로 '프로그램'을 설명한다. 인간의 행동은 입버릇처럼 내뱉고 다니는 신념보다 자기도 모르는 믿음에 더 좌우된다.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된다. '흑인은 지적으로 열등하다' 같은 고정관념도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인종차별주의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백인은 어쩌다 뛰어난 지적 성취를 이룬 흑인을 만나면 '흑인이지만 정말 대단하다'는 대사를 칭찬이랍시고 치게 된다. 작가가 미리 생각해둔 프로그램이 인물의 대사가 되어 배우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순간, 관객은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히 알게 된다 -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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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히말라야의 팔천 미터급 고봉에 올라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안전하게 귀환하는 것을 반복하듯이,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지 않고 안전함을 느끼는 순간을 그리워하는데, 그 경험은 호텔이라는 장소로 표상되어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노라니 프로그램의 근원도 이제는 알 것만 같다. 나의 유년은 잦은 이주로 점철되었다. 새로운 학교로 전학하여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원경험들이 쌓여, 그것이 프로그램으로 내 안에 저장되었을 것이다.

 

어떤 인간은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과한 뒤, 그 고통이 자신을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때 경험하는 안도감이 너무나도 달콤하기 때문인데, 그 달콤함을 얻으려면 고통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안의 프로그램은 어서 이 편안한 집을 떠나 그 고생을 다시 겪으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어디로든 떠나게 되고, 그 여정에서 내가 최초로 맛보게 되는 달콤한 순간은 바로 예약된 호텔의 문을 들어설 때이다.

벨맨이 가방을 받아주고 리셉션의 직원은 내 이름을 알고 있다. '나는 다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이제 한동안은 안전하다' 평생토록 나는 이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1)낯선 곳에 도착한다. 두렵다. 2)그런데 받아들여진다. 3)다행이다. 크게 안도한다. 4)그러나 곧 또다른 어딘가로 떠난다 -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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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은 걷기와 방랑벽에 대한 에세이에서 고대그리스의 소피스트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생각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방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철학자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들, 이를테면 사상은 옥수수 같은 곡물과 달리 안정적인 수학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도 아니어서 한곳에 머물기 어렵다는 것, 인맥이나 터전에 얽매인 직업, 대표적으로 정치인이나 농민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발상은 무게가 없다. 지혜도 그렇다. 기술도 마찬가지, 그래서 이런 무형의 자산을 가진 사람은 어딘가에 붙들려 있을 필요가 없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먹고 살기에도 유리했다. 마찬가지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들도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찾아 천하를 유랑했다 -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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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라는 질문은 작가라면 한 번쯤 받아보는 것이다.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기억이 나는 거의 없다. 영감이라는 게 있다면 언제나 나의 모국어로, 주로 집에 누워 있을 때 왔다. '작가라 좋으시겠어요. 세계 어디에서도 쓸 수 있잖아요?' 같은 말도 자주 듣는다.

 

물론 세계 어디에서든 쓸 수는 있다. '검은 꽃'은 과테말라의 안티구아에서 앞부분을 썼고,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뉴욕에서 시작해 거기서 끝냈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나는 많은 나라와 도시를 여행했고, 때론 한곳에서 몇 년 동안 머무리도 했지만, 지금까지 낸 스무 권이 넘는 책들 중에서 단 두 권만 이 모국어의 영토 밖에서 쓰였다.

 

심지어 여행기도 집으로 돌아와 썼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 혹은 글을 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지는 않는다. 여행은 오히려 그것들과 멀어지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격렬한 운동으로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 마침내 정신에 편안함이 찾아오듯이, 잡념이 사라지는 곳,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땅에서 때로 평화를 느낀다.

 

모국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이제 그 언어의 사소한 뉘앙스와 기색, 기미와 정취, 발화자의 숨은 의도를 너무 잘 감지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진정한 고요와 안식을 누리기 어려워줬다. 모국어를 다루는 것이 나의 일이지만, 그렇다고 늘 편안하다는 뜻은 아니다.

 

'당신의 나무'처럼 여행에서 겪을 일을 쓰기로 마음먹을 때도 있다. 그런 '영감'조차 집에 돌아왔을 때에야 떠오른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모든 게 현재시제로 서술된다. 과적 픽업트럭에 실려 이동하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밀림 속으로 들어간다,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유적의 규모와 그 유적을 부수어버릴 듯 맹렬히 자라고 있는 나무의 위용에 압도된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나라는 주체가 있지만, 그 주체를 초월하는 생생한 현재가 바로 눈앞에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원경으로 물러난다. 범속한 인간이 초월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자아가 지워지고 현재가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의미로 육박해오는 이러한 초월의 경험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야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

 

언어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그것은 '생각'이 되어 유통된다. 유통되지 않고 재고로 남은 기억은 창고 깊숙한 곳에 묻혀 잊혀진다. 고대 그리스와 달리 이제는 생각을 들고 몸소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것은 책으로 묶어 도매상과 서점을 통해 스스로 돌아다닌다 -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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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경험의 관계는 산책을 하는 개와 주인의 관계와 비슷하다.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하지 말았어야 할 말부터 떠오르고, 밤이 되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게 된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를 말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게 된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으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이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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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광기구 통계에 따르면 인터넷이 아직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전인 1995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5억 2천만 명이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났으나 2016년이 되면 12억 4천만 명으로 두 배가 넘게 늘어났다.

 

전 세계 항공 승객은 1995년에는 13억 명가량이었는데 2017년에는 39억 명으로 세 배나 폭증했다. 인류는 여행을 포기할 생각이 없을 뿐 아니라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더 많이 이동하고자 한다는 것을 통계는 보여준다.

 

VR이니 AR이니 하는 가상현실 기술이 여행을 데체하리라는 얘기도 어디선가 벌써 하고 있을 것 같지만 지금까지의 역사를 돌아볼 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다. 호모 비아토르는 지금 이 순간도 전 세계 곳곳에서 짐을 꾸리고 길을 떠나고 있다 -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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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와 마찬가지로 운전자는 일인칭이다. 자동차는 그렇게 설계돼 있다. 운전을 하는 자기 모습을 보는 것보다 차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주시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행도 마찬가지, 멋진 곳에 가서 놀라운 것을 경험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일인칭의 경험이다.

 

그런 아쉬움에 셀카를 찍어보지만, 셀카는 기본적으로 일인칭의 거울상으로 나타난다. 내가 렌즈를 보면 렌즈가 나를 찍는 것, 완벽한 삼인칭이 되지는 못한다. 그런데 '알쓸신잡' 같은 여행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되면 나는 '여행을 하는 나'를 삼인칭 시점으로 보게 된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나를 찍기 때문에 그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열여덞 시간 동안 했던 말과 행동 중에서 일부가 적나라하게 눈앞에 나타난다. 나는 조금은 부끄러운 기분이 되어서 화면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거울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가장 종하나느 각도로 얼굴을 돌린다고 한다. 그래서 무방비 상태로 찍힌 스냅 사진을 볼 때 그게 자기 모습이 아니라고 여기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열여덞 시간을 동영상으로 찍힌다면?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찍힌 자기 모습을 처음으로 보게 된다. 화면 속의 나는 여행 중이다. 제작진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거나 뭔가를 그들에게 설명하기도 한다. 별 의미없는 말을 하거나 오리배의 페달을 밟거나 연락선 갑판에 누워있기도 한다. 그런 모습으로 여행 중인 나의 모습을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나 자신이 보게 되는 것이다 -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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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접근한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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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는 'armchair traveler'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말로 바꾸자면 '방구석 여행자'쯤 될 것이다. 편안한 자기 집 소파에 앉아 남극이나 에베레스트, 타클라마칸사막을 탐험하는 여행자를 조금은 비꼬는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는 모두 '방구석 여행자'이다. 우리는 여행 에세이나 여행 다큐멘터리 등을 보고 어떤 여행지에 대한 환상을 품는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그곳을 다녀온다. 그러나 일인칭으로 수행한 이 '진짜' 여행은 시간과 비용의 문제 때문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그곳을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우리는 또다른 여행서나 TV의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이미 다녀온 곳을 그들이 여행하는 모습을 읽거나 보게 된다. 나와는 다른 그들의 느낌과 경험이 그들의 언어로 표현되어 내 여행의 경험에 얹힌다.

 

여행의 경험은 켜켜이 쌓여 일종의 숙성과정을 거치며 발효된다. 한 층에 간접경험을 쌓고 그 위에 직접 경험을 얹고 그 위에 다시 다른 누군가의 간접경험을 추가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여행에 비여행, 탈여행이 모두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여행 경험이 완성되는 것이다.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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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오래전부터 인생이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선가 오고, 여러 가지 일을 겪고, 결국은 떠난다. 우리는 극단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지구라는 별에 도착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여행은 먼저 도착한 이들의 어마어마한 환대에 의해서만 겨우 시작될 수 있다.

 

신생아는 자기가 도착한 나라의 말을 모른다. 부모와 친척들이 참을성을 가지고 몇 년을 도와야 비로소 기초적인 언어를 익힐 수 있다. 부모는 아이가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가 될 때까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다. 충분히 성장하면 인간은 지구에 새로 도착한 여행자들을 환대함으써 자신의 받은 것을 갚는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갈 때, 남아 있는 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그들을 환송한다. 자구상의 거의 모든 문명은, 마치 다른 세계로 떠나는 여행자를 배웅하듯이 망자를 대한다. 관 속에 노잣돈이나 길동무 인형을 넣어준다. 철처한 무신론자조차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면 그들이 다음 세상에서 평안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한다 -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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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으맂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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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행 기차의 컴파트먼트에서 나는 그들이 내게 기대하는 역할을 그대로 했다. 숨쉬는 마네킹이 되었던 것이다. 간간이 빈자리를 찾는 승객들이 컴파트먼트 문을 열었다가 세 명이 모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문을 닫았다. 내가 문을 지키고 있었기에 두 여자는 안쪽에서 편안히 누워 갈 수 있었다. 밤새 아무도 우리 컴파트먼트로 들어오지 못했다.

 

아침이 되어 우리는 밝게 웃으며 헤어졌다. 그들은 한국인이 쌀을 주식으로 한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내가 백인 여성들이 아무 위협을 느끼지 않고 자신들 옆에 재울 수 있는 존재로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 것도 아닌 자'인 것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였지만, 조금 달랐다.

 

젊은 날의 나는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랐지만, 나의 인종이나 국적에 따라 '특별하게' 분류되고, 일단 분류된 이후에는 사실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경험은 그전까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고 기호화된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타입이 정체성을 대체한다. 즉, 특별한 존재somebody가 되는 게 아니라 그저 개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자', 노바디nobody일 뿐이다 -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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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심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나면 키클롭스의 섬에 도착한 오디세우스 같은 상황이 된다. 내가 누구인지를 아무도 모르는 곳, 니하오마와 곤니치와의 시험을 통과해 겨우 한국인임을 알리는 데 성공하더라도 너의 코리아는 노스냐 사우스냐를 묻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모국에서 가지고 있던 복잡한 정체성은 남한 출신의 여행자라는 간단한 스테레오타입으로 대체된다. 이때 오디세우스가 느낀 유혹, 키클롭스라는 타자를 향해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묻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느냐가 성숙한 여행의 관건이다.

 

그러나 젊은 날의 나는 그러지 않았다.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이들에게 내가 작가라고 알리곤 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물었다. 주로 어떤 글을 쓰시나요? 나는 소설이라고 대답했고 그러면 대화는 그쯤에서 끊긴다. 여행을 거듭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작가는 '주로 어떤 글을 쓰'는지를 굳이 설명해줄 필요가 없는 이들, 즉 그 글을 읽은, 다시 말해 독자에게만 작가라는 것을 -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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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뱅 테송의 말처럼 여행이 약탈이라면 여행은 일상에서 결핍된 어떤 것을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하러 그 먼길을 떠나겠는가.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론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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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땅에서 우리의 힘은 약해진다. 약해지기 때문에 더더욱 자기 존재를 타인으로부터 확인받고 싶어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그들의 환대와 인정, 선물이 필요하다. 물론 자본주의는 이런 습격을 부드러운 거래로 바꾸었다. 그러나 그 거래로 모두가 이익을 얻는 것은 아니어서 누군가를 동굴로 돌아옵 키클롭스의 마음으로 외부인을 적대하거나 무시한다.

 

그럴 때 여행자는 더 큰 불안과 좌절을 겪고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여행은 습격이 되고 여행자는 침입자가 된다. 그 결과는 불필요한 고난으로 여행자 자신에게로 돌아오곤 한다.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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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는 비행기가 힘차게 활주로를 박차고 인천공항을 이륙하는 순간마다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기분이 든다. 휴대전화 전원은 꺼졌다. 한동안은 누군가가 불쑥 전화를 걸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모든 승객은 안전벨트를 맨 체 자기 자리에 착석해 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어지러운 일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떨어지는 순간이다. 여행에 대한 강렬한 기대와 흥분이 마음속에서 일렁이기 시작하는 것도 그때쯤이다.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다 -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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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뒤에 나도 길냥이 두 마리를 집에 들였다. 방울이는 아홉 살에 죽었다. 깐돌이는 아직 건강하지만 열다섯 살을 넘겼으니 오래지 않아 방울이 뒤를 따를 것이다.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개와 고양이를 반려라고 생각하면 너무 애닲다. 무슨 반려들이 이토록 자주, 먼저 떠나는가.

 

나에게 녀석들은 반려가 아니라 여행자에 가깝다. 세미와 이슬이도, 방울이와 깐돌이도 잠시 우리집에 왔다가 떠났거나 떠날 것이다. 긴 여행을 하다보면 짧은 구간들을 함께하는 동행이 생긴다. 며칠 동안 함께 움직이다가 어떤 이는 먼저 떠나고, 어떤 이는 방향이 달라 다른 길로 간다.

때로는 내가 먼저 귀국하기도 한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게 되는 이도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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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부터 여행에 대해 쓰고 싶었다. 여행은 나에게 무엇이었나, 무엇이었기에 그렇게 꾸준히 다녔던 것인가. 인간들은 왜 여행을 하는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구하고 싶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그러니까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기준으로 보면, 나는 그 무엇보다 우선 작가였고, 그다음으로는 역시 여행자였다.

 

글쓰기와 여행을 가장 많이, 열심히 해왔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쓸 기회가 많았지만 여행은 그렇지를 못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정말 많은 것들이 기억 깊은 곳에서 딸려 올라왔다.

 

'여행의 이유'를 캐다보니 삶과 글쓰기, 타자에 대한 생각들로 이어졌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게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게속될 것이다 -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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