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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다음 신작도 기대되는 프레드릭 배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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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배크만이라는 소설가는 처음 들어 봤는데 우연한 계기로 그가 쓴 '오베라는 남자'를 알게 됐다. 오베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의 무심함이 나와 비슷한 거 같아 공감이 됐다. 


죽은 아내가 그리워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오베에게 방해인 듯 방해가 아닌 이웃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웃음이 나면서도 묘한 감동을 줬다. 오랜만에 좋은 소설을 읽은 것 같아 프레드릭 배크만의 다음 신작이 기대가 된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오베가 주민 자치회 회장이었을 당시, 사람들이 쓰레기 처리장에 허가받지 않는 쓰레기를 투기하는 걸 막기 위해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자고 강력히 추진했다. 오베에게는 참으로 짜증스럽게도, 그 제안은 투표에서 부결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제안을 '살짝 거북하다'고 느꼈다. 게다가 그들은 비디오테이프를 전부 보관하는 것도 골치 아픈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오베가 '정직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진실'에 대해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다고 끈질기게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 17


아내가 죽은 지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오베는 하루에 두 번, 라디에이터에 손을 얹어 온도를 확인하며 집 전체를 점검했다. 그녀가 온도를 몰래 올렸을까봐 - 55


사람들은 오베가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다 - 69


누군가를 잃게 되면 정말 별난 것들이 그리워진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 미소, 잘 때 돌아눕는 방식, 심지어는 방을 새로 칠하는 것까지도 - 83


그녀는 종종 "모든 길은 원래 당신이 하기로 예정된 일로 통하게 돼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그 '원래 당신이 하기로 예정된 것'은 아마도 '무엇'이었으리라. 하지만 오베에게 그건 '누군가'였다 - 114


살다보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될지 결정을 내릴 때가 오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이 기어오르게 놔두는 사람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때가 - 153


모든 남자들에게는 자기가 어떤 남자가 되고 싶은지를 선택할 때가 온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면, 남자에 대해 모르는 것이다 - 159


자살하기에는 내일도 오늘 못잖게 괜찮은 날이다 - 177


오베는 그녀를 만나기 전 어떻게 살아왔느냐는 질문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물어봤다면, 그는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고 대답했으리라 - 182


누군가 묻는다면,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자기는 결코 살아 있던 게 아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 - 189


그녀가 자기 넓적다리만큼이나 두꺼운 그의 팔을 잡고 그 부루퉁한 소년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필 때까지 간질이면, 그건 마치 보석을 둘러싸고 있던 희반죽이 갈라지는 것 같은 일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면 마치 소냐의 내면에서 무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그 무언가는 온전히 소냐의 것이었다 - 207


할 말이 아무것도 없으면 물어볼 거리를 찾아봐야 한다는 것.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싫어한다는 걸 깜박하도록 하는 게 하나라도 있다면, 그때 바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 - 212


하지만 어디에서나 이내 하얀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엄격하고 독설적인 얼굴로 그를 막아 세웠다. 그들과는 싸울 수가 없었다. 그들이 국가의 편에 서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국가여서였다. 마지막 민원은 거부당했다. 싸움은 끝났다.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들이 그러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오베는 그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 279


세상 사람 모두가 그녀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아야 한다. 그게 사람들이 했던 얘기였다. 그녀는 선을 위해 싸웠다. 결코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을 위해 싸웠다. 그리고 오베는 그녀를 위해 싸웠다. 왜냐하면 그녀를 위해 싸우는 것이야말로 그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아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 280


아마도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슬픔이 두 남자를 더 가깝게 이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슬픔이란 그런 점에서는 믿을 만한 감정이 아니다. 사람들이 슬픔을 공유하지 않을 경우, 슬픔은 대신 서로를 더 멀리 밀어낼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 332


분명 어떤 사람들은 자동차를 보는 걸로 사람의 감정을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 333


오베는 사람들은 제 역할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는 언제나 제 역할을 했고, 누구나 그에게서 그걸 빼앗아갈 수 없다 - 353


그들은 하나같이 텅 빈 눈을 하고 있었다. 자기들은 그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평범한 사람들을 마모시키다가 결국에는 그들의 삶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반짝거리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듯 - 359


아마도 아니타의 기진맥진한 얼굴을 봐서였을 것이다. 더 큰 견지에서 보면 이 단순한 전투에서 이겼다는 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깨달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코다가 갇혀 있건 말건 아무 차이도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돌아온다. 그들이 소냐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조항들과 서류들을 들고. 하얀 셔츠의 남자들이 언제나 이긴다. 오베 같은 남자는 언제나 소냐 같은 사람을 잃는다. 아무도 그에게 그녀를 되돌려주지 못한다 - 368


집 안은 무척 조용했다. 실은 동네 전체가 다 그랬다. 모두들 자고 있었다. 그제야 오베는 총소리에 고양이가 깰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베는 그 가엾은 동물에게 넋이 나갈 정도로 겁을 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보고는 단호하게 라이플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가 라디오를 켰다. 자기 목숨을 거두는 데 음악이 필요해서가 아니고, 그가 저세상으로 가고 나서도 라디오가 전력량을 딸깍딸깍 올릴 거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어서도 아니었다. 만약 고양이가 총소리에 깬다 해도 요즘 라디오에서 줄창 나오는 최신 팝송의 일부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잠들겠지. 그게 오베의 사고 과정이었다 - 374


이날은 오베가 마침내 죽는 날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이날 저녁은 다음 날 아침에 오베가 자기 집에서 고양이뿐만 아니라 동성애자와 같이 잠에서 깨게 되기 전날 저녁이었을 뿐이다. 소냐는 이걸 좋아했을 것이다. 필시 그랬겠지. 그녀는 호텔을 좋아한다 - 379


때로 어떤 남자들이 갑자기 어떤 일을 했을 때 그 이유를 설명하기란 어렵다. 물론 그들 자신이 언젠가 그 일을 하게 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지금 하는 게 나아서일 수도 있다. 때로는 정반대의 이유이기도 했다. 즉 자기들이 진작 그 일을 했어야 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아마 오베도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내내 알고 있었겠지만,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시간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말할 시간이 넘쳐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나면,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만약'과 같은 말들을 곱씹는다 - 380


어떤 남자들이 갑자기 어떤 일을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기란 때로 어렵다. 오베는 아마도 자기가 뭘 했어야 했는지 내내 알았을 것이다. 죽기 전에 누굴 도와야 했는지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때가 올 때까지는 늘 낙관적이다.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나눌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387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특히나 무척 오랫동안 틀린 채로 살아왔을 때는 - 410


오베는 강도들이 눈을 밟으며 뛰어가는 소리를 듣고, 놈들이 달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머릿속의 고통을 참을 수가 없었다. 형광등이 줄줄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폐에 산소가 없었다. 귓속에서 피가 꿀렁이듯 뛰는 혈관 때문에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와중에 멀리서 파르바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잰걸음으로 달려오다 넘어지는 바람에 그 작은 발 위에 세워져 있던 불균형한 몸이 눈 위로 미끄러지는 게 느껴졌다. 모든 게 깜깜해지기 전 오베가 마지막으로 생각한 건 구급차를 주택들 사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그녀에게서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거주자 구역에서는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으니까 - 435


죽음이란 이상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양 인생을 살아가지만, 죽음은 종종 삶을 유지하는 가장 커다란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때로 죽음을 무척이나 의식함으로써 더 열심히, 더 완고하게, 더 분노하며 산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죽음의 반대 항을 의식하기 위해서라도 죽음의 존재를 끊임없이 필요로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죽음에 너무나 사로잡힌 나머지 죽음이 자기의 도착을 알리기 훨씬 전부터 대기실로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놓으리라는 사실이다 - 437


201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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