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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루키가 바라본 시드니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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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 주 시드니에서 개최된 제27회 시드니 하계 올림픽을 직접 관람했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가 당시 그곳에서 있었던 경험들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당시 나는 초등학생으로 솔직히 올림픽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기에 책을 통해 시드니 하계 올림픽을 엿볼 수 있어 신기했다. 무엇보다 당시 있었던 다양한 이야기와 사건들(한국  스태프들이 탈옥한 범죄자들에게 인질로 붙잡혔던 것)을 알게 됐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을 통해 호주 역사와 함께 그곳에 사는 수많은 동물들, 오리너구리부터 악어 솔티, 박스 젤리피시 등을 간단히 소개하며 과거 영국인들이 호주를 처음 찾았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해준다.


그동안 저자는 자신이 낸 책을 통해 마라톤에 대해 수없이 언급했는데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마라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특히 시드니올림픽 여자 400m 금메달을 수상했던 캐시 프리먼의 이야기, 이누부시 다카유키와 아리모리 유코에 대해 나온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언급한 올림픽의 지루함만큼 이 책 역시 올림픽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와 같은 독자에겐 그동안 읽었던 그의 책 중에선 지루함을 빼놓을 수 없었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신기한 일이지만, 우리는 100미터 달리기 자체를 볼 때보다 끝나고 선수들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볼 때, 사람의 몸에 얼마나 순수한 빛을 발하는지 체감할 수 있다. 현장에서 100미터 달리기를 보니 빠른지 빠르지 않은지는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려 무언가와 비교할 수가 없다. 물론 엄청나기까지 한 몸의 움직임을 보고 인간 능력의 한계에 육박하는 스피드라는 것은 이해했다. 그러나 정말로 빠르냐고 하면 희한하게도 그런 실감은 없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다부진 근육의 한 무리 선수들이 눈앞에서 무언가 한계를 향해 도전한 것 같다는 어렴풋한 인식 뿐이다. 하지만 모두 끝났을 때, 선수들이 표정과 동작에서, 그 허탈감이나 양동이 바닥을 뚫을 듯한 환희에서, 그들이 얼마나 빨리 달렸나 하는 것을 그제야 우리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감동 같은 것이 쫙 밀려온다. 이것은 뭐랄까, 그렇지, 일종의 종교다. 가르침이다. - 214


내 생각에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나라는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그때 비로소 '타인의 아픔을 내 것으로 느낄 줄 아는' 정신적 성숙기에 발을 들인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나라는 지금이 중요한 전환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드니 올림픽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신적 역사에 이정표가 될 것이다. - 296


현장에서 그런 모습을 보며 실감하지만, 마라톤에서는 1위 선수만이 승자가 아니다. 선수에게는 저마다의 싸움이 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장소에서 저마다의 싸움을 한다. 우리는 조간신문을 펼쳐 매달 숫자를 확인한다. 미국이 몇 개, 러시아가 몇 개, 일본이 몇 개, 그러나 그런 것에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그저 색깔별로 상품을 주는 '뽑기'의 숫자가 아닌가. - 337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는 이 일상 속에서 땅에 달라붙어 살아가야만 한다.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 우리는 투쟁을 계속하고 때로는 갈 곳을 몰라 당황한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만약 선수가 투쟁심을 잃는다면 그건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림픽은 우리에게 하나의 거창스러운 메타포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세상 어딘가에서 이 메타포와 실체와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건 아마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메타포가 또 하나의 다른 메타포로서 연결되었을 뿐이라면, 요컨대 또 하나의 풍선이 다른 풍선하고만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는 어디로든 갈 수 없다. 우리가 도달하는 것은 아마도 기묘하게 생긴 대중매체의 놀이공원이리라. - 401



201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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