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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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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장편소설 '아몬드'를 쓴 저자 손원평 작가는 서강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한국 영화 아카데미 영화과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지난 2001년 제6회 '씨네21' 영화평론상을 받았고, 2006년 제3회 과학 기술 창작문예 공모에서 '순간을 믿어요'로 시나리오 시놉시스 부문을 수상했다. 이후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 '너의 의미' 등 다수의 단편 영화 각본을 썼으며 '1988년생'으로 제5회 제주 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녀가 쓴 장편소설 '아몬드'는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다.


# 책을 읽은 이유


한 편의 이야기를 만나고 싶었다. 경제, 경영 분야의 책만 읽다가 문득 문학을 읽고 싶어졌던 나는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가 '아몬드'라는 소설을 만났다. 무표정의 어린 남자 아이의 모습에서 마치 나를 만난 것처럼 그렇게 '아몬드'를 골랐다. 국내 작가의 이름은 대부분 안다고 생각한 나는 손원평 작가를 처음 만나보았다. 내가 살고 있는 제주도에서 제주 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던 작가임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우연히도 소설 '아몬드'를 통해 그녀를 만나게 됐다.


# 줄거리·느낀 점


'아몬드'의 주인공 선윤재다. 선윤재는 보통 아이들과는 다르다.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병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웃음이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선윤재가 유일하게 의지하는 사람은 바로 엄마와 할멈이었다. 그렇게 조용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윤재는 17살이 되는 생일 날 시내로 나갔다가 묻지마 살인으로 엄마와 할멈을 둘 다 잃게 됐다. 그럼에도 아무런 감정이 없어 슬픔조차 느끼지 못했다.


17년이라는 인생을 살며 엄마와 할멈과 살았던 윤재는 가족들이 남긴 책방에 홀로 남았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날 심박사와 윤교수가 다가왔고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곤이가 나타났다. 곤이와는 첫 만남은 좋지 않았다. 곤이 대신 곤이 엄마의 아들 행색을 했기에 그는 윤재를 좋아하지 않았다.


곤이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던 윤재는 그럼에도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화조차 내지 않는 선윤재를 본 곤이는 호기심으로 책방에 놀러왔고 그들은 친구가 됐다. 곤이를 통해 사람 관계와 친구의 우정을 알게 된 윤재에겐 어느 날 이도라라는 여자 아이가 나타나며 그는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웠다.


세상엔 오로지 엄마와 할멈밖에 없었던 선윤재에게 우연히 나타난 주변인들과의 여러 사건을 통해 그가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건 장애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뿐이었다. 나 역시 윤재처럼 인생을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잘 못하고 감정을 느끼지 하는 경우도 있다.


슬픈 영화를 보면서 슬프지 않은 경우도 있었으며 관객 앞에서 유머를 던지는 희극인을 보며 웃거나 박수치지 않는 것처럼, 그런데 다른 사람과 똑같이 웃거나 울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잘못된 것이고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 미디어나 뉴스를 보게 되면 '공감 불능 사회'라는 주제가 많이 나온다. 공감이 불가능했던 선윤재처럼 바쁜 일상에 치여 살았던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거나 이해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아몬드'를 읽으며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하나둘 들어오게 됐다.


정말 오랜만에 국내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윤재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고 곤이와 도라를 만나며 새로운 감정을 느낀 그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여러 감정을 느낀 소설이기도 했다. 문장의 흐름도 단어의 선택도 좋았기에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갔다. 이 책을 쓴 손원평 작가는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1988년생'도 썼다고 하는데 그 책도 따로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솔직히 할멈이 붙여 준 애정 어린 별명을 이해하는 데엔 시간이 좀 걸렸다. 책에서 본 괴물들은 예쁘지 않았다. 아니, 예쁠 수 없는 게 괴물이었다. 그런데 할멈은 왜 날 예쁜 괴물이라고 부르는 걸까. 모순된 개념을 연달아 붙여서 의미를 낳는 '역설'이라는 표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뒤에도 할멈의 방점이 '예쁜'에 찍혀 있는지 '괴물'에 찍혀 있는지 잘 몰라 헷갈리곤 했다. 어쨌든 할멈은 나를 사랑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했으니 나는 할멈을 믿기로 했다 - 21


엄마는 내게 아몬드를 많이 먹였다. 나는 아몬드라면 미국산부터 시작해서 호주산, 중국산, 러시아산까지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종류는 다 먹어 봤다. 중국산에선 기분 나쁜 쓴 맛이 나고 호주산은 뭔가 모르게 시큼털털한 흙냄새가 난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도 있지만 내 입엔 역시 미국산, 그중에서도 캘리포니아산이 최고다. 이제 태양 빛을 잔뜩 머금어 은은한 갈색빛이 도는 캘리포니아산 아몬드를 먹는 나만의 방법을 알려주겠다. 먼저 아몬드 봉지를 집어 들고 그 안에 든 아몬드의 촉감을 느껴 본다. 포장지 아래로 만져지는 단단한 알맹이들이 고집스럽다. 봉지 윗부분을 가만히 뜯고 이중 처리된 지퍼를 연다. 눈은 감은 상태여야 한다. 그런 다음,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봉투 안으로 코를 들이민다. 숨을 끊어서 들이쉰다. 향이 몸속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마침내 아몬드 향이 깊이 들이찼을 때 반 줌 정도를 입 안에 털어 놓는다. 혀로 아몬드의 곁을 느끼며 한동안 입 안에서 굴린다. 뾰족한 곳을 찔러도 보고 아몬드 표면의 홈을 혀로 훑어도 본다. 너무 오래 해서는 안 된다. 아몬드가 침에 불면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건 그저 클라이맥스를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다. 짧으면 시시하고, 길면 임팩트가 사라진다. 적당한 타이밍은 당신이 직접 찾아야 한다. 클라이맥스로 향해 갈 때는 아몬드가 점차 커지는 상상을 한다. 손톱만 한 아몬드가 포도알만큼, 키위만큼, 오렌지만큼, 수박만큼 점점 커진다. 이제 아몬드가 럭비공만큼 부풀었다. 바로 이때다. 와드득, 깨문다. 그러면 아그작 소리와 함께 멀고 먼 캘리포니아에서부터 날아든 햇빝이 입 안으로 퍼져 나간다 - 27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내 머리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 29


어려운 건 내가 먼저 천 원을 내는 거였다. 그러니까, 뭔가를 원한다거나 하고 싶다거나 어떤 것을 좋다고 표현하는 일들, 그런 게 힘든 이유는, 여분의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돈을 내야 하는데 나는 사고 싶은 것도 없고, 얼마는 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잔잔한 호수에 억지로 파도를 치게 만드는 것처럼 버거웠다. 가령 전혀 먹고 싶지 않은 초코파이를 보며 "나도 먹고 싶어"라고 말하는 것, 그러면서 "나도 하나 줄래?"라고 미소를 짓는 것. 누가 나를 툭 치고 지나가거나 약속을 어겼을 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하고 따져 묻는 것, 그러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물을 흘리는 것. 그런 것들이 내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 기왕이면 아예 안 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사람이 너무 잔잔한 호수처럼 보여도 이상한 애로 낙인찍힐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런 것도 '아주 가끔씩은' 해야 한다고 - 39


영화나 드라마 혹은 만화 속의 세계는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더 이상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엇다. 영상 속의 이야기는 오로지 찍혀 있는 대로, 그려져 있는 그대로만 존재했다. 예를 들어, '갈색 쿠션이 있는 육각형의 집에 노란 머리의 여자가 한쪽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가 책의 문장이라면 영화나 그림은 여자의 피부, 표정, 손톱 길이까지 전부 정해놓고 있었다. 그 세계에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책은 달랐다. 책에는 빈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단어 사이도 비어 있고 줄과 줄 사이도 비어 있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 앉거나 걷거나 내 생각을 적을 수도 있다. 의미를 몰라도 상관없다. 아무 페이지나 펼치면 일단 반쯤 성공이다 - 50


나는 너를 사랑하겠노라. 그것이 죄가 될지 독이 될지 혹은 꿀이 될지 영원히 알 수 없더라도 나는 이 항해를 멈추지 않으리. 의미는 전혀 와닿지 않지만 상관없다. 눈으로 글자를 따라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책의 향을 느끼며 한 글자 한 글자, 모양과 획을 눈으로 천천히 좇는다. 그건 내게 아몬드를 씹는 것만큼이나 신성한 일이었다. 눈으로 충분히 글자를 더듬었다고 생각되면 이번엔 소리를 내어 읽어 본다. 나는, 너를, 사랑하겠노라, 그것이 죄가, 될지, 독이, 될지, 혹, 은꿀이, 될지, 영원히알, 수없, 더라, 도나, 는, 이항, 해를, 멈추, 지않, 으리 - 51


엄마가 바닥에 피를 흩뿌리며 나동그라졌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밀었지만 할멈이 소리를 지르며 몸으로 막아섰다. 남자는 망치를 땅에 떨구곤 다른 손에 쥔 칼로 공기를 몇 차례 벴다. 나는 유리문을 쾅쾅 두드렸지만 할멈은 고개를 저으며 온 힘을 다해 문을 막았다. 할멈은 거의 울다시피 하면서 내게 무언가를 반복해 말했다. 그러는 동안 할멈의 뒤로 남자가 다가왔다. 뒤를 돌아 남자를 본 할멈이 커다랗게 포효했다. 하지만 단 한 번뿐이었다. 할멈의 거대한 등이 내 눈앞을 가렸다. 유리에 피가 튀었다. 빨갛게, 더 빨갛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점점 더 빨개지는 유리문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저 멀리 얼어 있는 전경들이 보였다. 마치 남자와 엄마와 할멈이 한 편의 연극이라도 벌이고 있다는 듯 모두들 꼼짝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모두가 관객이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 61


대부분은 침묵했고 몇몇은 말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하긴, 답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으니 그럴 버도 했다. 할멈도 그 남자도 모두 죽어 버렸다. 엄마는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므로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영원히 사라졌다. 나는 질문을 입 밖에 내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분명한 건, 엄마와 할멈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할멈은 영혼과 육식이 모두, 엄마는 껍데기만 남은 채로, 이제 내가 아닌 누구도 두 사람의 인생을 기억하지 못할 거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남아야 했다. 장례가 끝난 다음, 정확히 내 생일로부터 여드레 후, 나는 한 살을 더 먹었다. 그렇게 나는 열일곱이 되었다. 이제 완전히 혼자였다. 남은 건 엄마의 헌책방에 쌓인 무수한 책뿐이었다. 그 외에는 대부분의 것이 사라졌다. 더는 집 안에 연등과 반짝이는 전구를 달 필요도, 희로애락애오욕을 외울 일도, 내 생일 밥을 먹으로 인파를 뚫고 시내까지 나올 이유도 없어졌다 - 66


아주머니의 낮빛이 붉어졌다. 그녀가 나간 후 나는 잠깐, 엄마라면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말하기를 바랐을지 생각해 봤다. 아주머니의 반응을 봤을 때 내가 실수를 했다는 건 명백하다.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 실수한 건지, 그 실수를 실수가 아닌 것으로 만들려면 어떤 부분이 수정됐어야 하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해외여행을 갔다고 할 걸 그랬나, 아니다. 그랬더라면 참견하기 좋아하는 아주머니는 계속 질문을 던졌을 거다. 아니면 책값을 받지 말았어야 할까. 그것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침묵은 금, 그 속담을 참고하기로 했다. 웬만한 질문엔 답하지 말 것, 그런데 그 웬만함의 기준도 헷갈린다 - 73


책상 구석에 세워 둔 작은 액자 속의 우리 셋은 변함이 없었다. 웃고 있는 모녀와 표정 없는 나, 이따금씩 엄마와 할멈이 여행을 간 건 아닐까 하는 헛된 공상을 하곤 했다. 물론 결코 끝날 수 없는 여행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내 세계의 전부였다. 하지만 할멈과 엄마의 부재로 알게 된 건 세상에 다른 사람도 존재한다는 거였다. 그 첫 번째가 심 박사였다. 박사는 가끔식 책바에 들러 빵을 놓고 가거나 내 어깨를 꽉 잡으며 힘내라고 애기했다. 힘이 빠지지도 않았는데 - 81


생각해 보면 할멈이 엄마에게 바란 것도 평범함이었을지 모르겠다. 엄마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박사의 말대로 평범하다는 건 까다로운 단어다. 모두들 '평범'이라는 말을 하찮게 여기고 쉽게 입에 올리지만 거기에 담긴 평탄함을 충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게는 어려운 일일 거다. 나는 평범함을 타고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비범하지도 않으니까.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하는 이상한 아이일 뿐이니까. 그래서 나는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평범해지는 것에 - 90


그런데 따지고 보면 예감이라는 게 '그냥 문득 느껴지는' 건 아니다.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들은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조건과 결과로 나뉘어 차곡차곡 쌓인다. 그러다 보면 비슷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 무의식적으로 결과를 예측하게 된다. 그러니까 예감이란, 사실은 매우 인과적인 데이터다. 과일을 믹서에 갈면 주스가 될 것을 아는 것처럼, 남자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나에게 그런 '예감'을 주었다 - 92


할멈의 표현대로라면,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 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진 죽어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 - 132


공식적으로, 그러니까 아이들의 분류에 따르면 우리는 '적'이었다. 그동안 벌어진 일들만 보더라도 마땅히 그래야 했다. 그래서, 누가 그러자고 정한 것도 아닌데 학교에서 곤이와 나는 서로 모른 척했다. 말을 섞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우리는 칠판지우개나 분필처럼 그저 학교를 구성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거기서는 누구도 진짜가 아니었다 - 139


계절은 어느덧 5월의 초임에 들어서고 있었다. 5월 정도면 많은 게 익숙해진다. 신학기의 낯섦도 사라진다. 사람들은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천염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그래서 나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한 것에 비해 너무 값지다고 평가받는 달, 세상과 내가 가장 다르다고 생각되는 달이 5월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게 움직이고 빛난다. 나와 누워 있는 엄마만이 영원하 5월처럼 딱딱하고 잿빛이었다 - 152


나비가 있던 자리에 작은 점 같은 흔적이 남았다. 나는 나비가 편안한 곳으로 갔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비가 불편에 처하는 걸 막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이 눈싸움 같은 거였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게임이었다. 먼저 눈을 감는 쪽이 지는 것뿐이었다. 그런 종류의 싸움에서 나는 언제나 승자다. 사람들은 눈을 감지 않으려고 기를 쓰지만, 나는 애초에 눈을 감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 158


곤이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단순하고 투명했다. 나같은 바보조차 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세상이 잔인한 곳이기 때문에 더 강해져야 한다고, 그 애는 자주 말했다. 그게 곤이가 인생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우린 서로를 닮을 수는 없었다. 나는 너무 무뎠고, 곤이는 제가 약한 아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센 척만 했다. 사람들은 곤이가 대체 어떤 앤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단지 아무도 곤이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 171


어딘가를 걸을 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빼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서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를 형편없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 171


저 멀리 도라가 서 있다. 강한 바람에 머리칼이 왼쪽으로 높이 쏠렸다. 길고 윤이 나고 하나하나가 굵은 실처럼 두꺼운 머리칼이었다. 그 애의 걸음이 느려졌고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가까이 보는 건 처음이었다. 하얀 얼굴에 주근깨가 몇 개 박혀 있고 바람을 피하느라 얇게 뜬 눈에 속 쌍꺼풀이 져 있다. 그 눈이 나와 마주치자 놀라듯 조금 커졌다. 갑자기, 바람이 목적지를 바꾸었다. 도라의 머리칼이 천천히 방향을 바꿔 반대쪽으로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 애의 냄새를 실은 바람이 내 코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맡아 보는 냄새였다. 낙엽 냄새 같기도 하고 봄날 새순의 냄새 같기도 했다. 모든 반대되는 것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냄새였다.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코 앞에 서 있었다. 그 애의 머리칼이 내 얼굴을 때렸다. 아, 내가 짧게 신음했다. 따가웠다. 갑자기 가슴속에 무거운 돌덩이가 하나 내려앉았다. 무겁고 기분 나쁜 돌덩이가 - 193


나는 알고 있다. 곤이가 착한 아이라는 걸, 하지만 구체적으로 곤이에 대해 말하라면 그 애가 나를 때리고 아프게 했다는 것, 나비를 찢어 놓았다는 것, 선생에게 패악질을 부리고 아이들에게 물건을 집어 던졌다는 것밖에 말할 게 없다. 언어라는 건 그랬다. 이수와 곤이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거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알아요. 곤이는 좋은 애예요" - 223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윤 교수는 곤이를 낳지 않는 쪽을 선택했을까? 그랬더라면 그들 부부는 그 얘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거다. 아줌마는 죄책감에 병이 걸리지도 않았을 거고, 회한 속에 죽지도 않았을 거다. 곤이가 저지른 골치 아픈 짓들도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역시 곤이가 태어나지 않는 편이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그 애가 아무런 고통도 상실도 느낄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은 의미를 잃는다. 목적만 남는다. 앙상하게 - 224


고통을 내지르는 숨소리가 모두 허연 입김으로 나오는 지금과는 달리 한여름이었다. 그때는, 그때 우리는 여름의 정점에 있었다. 여름, 과연 그런 때가 있기나 했던 걸까. 모든 게 푸르고 무성하고 절정이었던 때가. 우리가 함께 경험한 게 정말로, 진짜였을까 - 243


내가 속삭였다. 그것의 이름이 슬픔인지 기쁨인지 외로움인지 아픔인지, 아니면 두려움이었는지 환희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나는 무언가를 느꼈을 뿐이다. 구역질이 났다. 떨쳐 내고 싶은 역겨움이 밀려왔다. 그런데도 멋진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졌다. 천천히 눈이 감겼다. 울고 있는 곤이가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비로소 나는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은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사실, 내 이야기의 끝은 여기다 - 248


아몬드 (양장) - 10점
손원평 지음/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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