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하트 더글라스 케네디 장편소설을 읽다
# 저자
장편소설 '데드하트'를 쓴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는 우리나라에서는 '빅 픽쳐' 작가로 유명세를 탄 바 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미국보다는 프랑스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하며 프랑스문화원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더글라스 케네디가 쓴 소설은 '빅 픽쳐', '픽업', '비트레이얼', '빅 퀘스천',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파이브 데이즈', '더 잡', '리빙 더 월드', '템테이션', '행복의 추구', '파리5구의 여인', '모멘트', '위험한 관계' 등이 있다.
# 줄거리·느낀 점
※ 스포 주의
어지러운 도시 생활을 오래도록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오지로 가서 생활해보고 싶은 생각을 한다. 보통 상상으로만 생각할 뿐인데 '데드하트' 속 주인공인 닉 호손은 이를 실행하기 위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호주로 여행을 떠난다.
호주로 온 닉 호손은 길에서 만난 목사에게 밴을 구매해 퍼스라는 곳으로 여행 계획을 세운다. 야간 운전 중 갑작스럽게 캥거루를 친 닉 호손은 수리 및 기름을 넣기 위해 한 주유소를 들렸고 그곳에서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게 될 여인 앤지를 만난다.
앤지를 만난 닉 호손은 그동안 만났던 여자와는 달리 야생 분위기를 내는 그녀에게 매력에 빠졌다. 이후 여러 차례 관계를 갖은 닉 호손은 슬슬 그녀와 헤어지려고 했으나 어느순간 정신을 잃었고 그녀의 손에 의해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마을인 울라누프로 납치된다.
공동생산과 공동소비로 주민자치를 실현하는 마을인 울라누프에 오게 된 닉 호손은 사이코 같은 앤지와 그의 아버지 대디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출을 시도하려 밴을 고쳤지만 결국 망가지게 된다.
데드 하트라는 황무지를 지나 약 400km나 떨어진 울라누프 마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사라진 닉 호손은 점점 정신이 피폐해지고 무기력해진다. 그런 닉에게 크리스탈이라는 여성이 나타나게 되고 그녀의 도움으로 다시 밴을 고쳐 탈출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닉은 대디를 포함한 울라누프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이게 되지만 경찰에 잡히지 않은 채 탈출을 성공해 미국으로 돌아온다.
장편소설 '데드하트'의 주인공 닉 호손은 이기적이면서도 아무런 책임을 지고 싶지 않는 청년이다. 그런 그에게 하늘이 벌이라도 주듯 나타난 앤지와 울라누프 마을, 그곳에서도 그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런 그에게 천사처럼 내려온 크리스탈도 탈출을 도우려다 결국 죽게 됐지만 닉은 잠깐이나마 자책할 뿐 어떻게든 호주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동안 더글라스가 쓴 장편소설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을 정도로 그의 팬이라 자부한다. 이번에 나온 장편소설 '데드하트'도 주말동안 단숨에 읽었고 그의 중독성 있는 스토리와 문체에 감탄이 나왔다. 잠시나마 킬링 타임을 갖고 싶거나 최근에 나온 장편소설 중에서 추천을 받고 싶다면 더글라스 케네디의 '데드하트'를 읽어보면 좋겠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작고 사소한 행복이야말로 우리의 생에서 기대할 수 있는 진정한 축복일진대 왜 우린 평생 어렵게 행복을 찾아 헤맬까? - 22
오하이오 주 애크런이라면 자동차타이어를 생산하는 공장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닌가? 애크런에서 2년을 보낸다는 건 내 자신을 스스로 박제해두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왜 나는 아무런 보람도 없는 일에 내 자신을 꽁꽁 묶어두려 하는가? 나에게는 생계를 책임질 가족도 없지 않은가? 내가 꿈꾸는 홀가분한 삶을 살고 싶다면 잠시나마 다람쥐 쳇바퀴에서 벗어나 거대한 자연으로 사라질 때가 되지 않았나? - 26
세상의 시작인가? 아니면 세상의 끝인가? 아무튼 내 처지에 걸맞은 심연이야. 내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변명의 여지없이 시각적으로 확인했다. 이제 더 이상 볼 게 없었다. 오지? 이미 눈으로 확인했으니 여행의 목적이 이미 실현된 게 아닌가? - 48
원시적인 대자연 속에 있다 보면 사소한 근심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은 죄다 헛소리일 뿐이었다. 내 경우에는 오히려 두려움과 자기혐오가 증폭되었다. 대자연이 내게 말했다. "넌 아무것도 아닌 존재야" - 59
남자들 대부분은 여자가 섹스를 강요하는 상황이 되면 두려움을 느낀다. 여자가 권총을 겨누며 섹스를 원할 경우 더욱 그렇다 - 85
여행지에서의 불장난은 유효 기간이 짧다. 유통기한이 길어야 일주일을 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불장난에 빠져들게 된다. 끝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음에도 '며칠만 더' 시간을 늘려보려 하는 건 어리석고 미련한 짓이었다 - 91
향수병이 가장 심하게 느껴질 때는 언제일까? 내가 스스로 나를 유배시킨 경우인 듯했다. 직므 나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곳에 와 있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자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곳,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에 와 있었다 - 108
절벽 위에 앉아 90미터 아래의 울라누프 마을을 내려다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가장 먼저 벗어날 길 없는 막다른 길이 떠오르지 않을까? 뜨거운 태양에 시들어버린 마을, 비상구가 보이지 않는 구덩이의 중심부에 서서 붉은 포탑들을 올려다보면 위협적인 자연에 조롱당한 느낌이 들 것 같았다 - 151
그날 밤, 문어의 빨판 같은 앤지의 팔에 안겨 잠이 들기 전 '소니와 셰어'라는 이름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나는 결혼하길 원한 적이 없었고, 아이를 원한 적도 없었다. 나란 인간을 복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곧 아빠가 되어야 하고, 아이의 이름을 지어야 하다니? 소니와 셰어? 그 이름이 마치 죽음의 종소리처럼 귓전을 울렸다 - 188
5년 동안 울라누프에서 가석박 없는 생활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이 마을이 정말 나의 종착지인가? 나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죄수처럼 어느 화창한 날 아침에 누군가 내 등을 툭 치며 '이제 죄수 생활이 모두 끝났어. 나가도 돼.' 하고 말하기를 헛되이 희망했다. 혹은 경비가 더없이 삼엄한 이 마을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기를 헛되이 희망했다 - 202
사람들은 힘든 노동에 더욱 큰 목적이 있는 척하며 삶을 견딘다. 노동이 그저 의식주를 해결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 아니라 더욱 큰 목적이 있는 척한다. 결국 우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일할 뿐이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초라한지 마주하지 않기 위해 일할 뿐이다. 계속 바삐 일하다 보면 우리의 삶이 절망적으로 무가치하다는 사실과 우리 스스로 빠져든 막다른 길의 깊은 수령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 204
엔지의 말대로 나는 똥오줌이 질펀한 매트리스에서 잠을 자야 했다. 앤지는 나를 똥오줌 천지인 매트리스에 내버려두고 빈백 의자에서 잠들었다. 그때서야 나는 내가 벌인 짓이 마냥 연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머릿속이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 자신도 알 수 없는 세계에 다다라 있었다. 연기였다면 지금쯤 포기해야 마땅했다. 밤새 똥오줌 천지인 매트리스에서 누워 잔다는 건 연기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더러운 침구를 앤지의 얼굴에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내 의지력은 완전히 바닥났고 기력은 탈진 상태였고 머릿속은 몽롱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 219
이제 예전생활보다 더욱 의미 없는 일상에 갇힌 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며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대디가 밴을 망가뜨렸을 때 내가 왜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도 깨달았다. 내가 마침내 소중한 시간을 들여 구축한 일이었기 때문이며, 혼신을 다해 일했던 성과가 눈앞에서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 285
앤지에게 작별키스를 하고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의자로 앤지의 머리를 내려치고 싶기도 했다. 결국 나는 이 모든 어리석은 우연에 머리를 가로저었을 뿐이다. 주유소에서 쓸데없이 멈췄고, 낯선 여자를 만났고, 갑자기 삶이 엉망이 되었다. 운명은 잔인하지 않지만 터무니없었다.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마지막으로 집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이 쓰레기장 같은 집이 머릿속에 영원히 기억되도록 깊이 아로새겨 두었다. 마침내 나는 문을 열었고, 정식으로 도주로에 올랐다 - 297
여태껏 지금 달리고 있는 길에 필적할 만큼 잔혹하고 위험한 길로 들어서본 적이 없었다. 황량하고 메마른 땅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잠시 더위를 식힐 나무그늘도 없었다. 마른 잡초조차 없었다. 생명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생명체가 나타나면 여지없이 죽여 버리는 무시무시한 황무지였다. 평평하게 펼쳐진 메마른 세계, 검붉은, 녹아내린, 대륙의 데드 하트 - 311
크리스탈은 나를 지나치게 많이 아껴주었다. 나는 크리스탈이 지불한 대가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 나느 또 다시 아무런 소속 없이 이곳에 있다. 내게 연결된 끈은 없다. 마침내 나는 나의 고독, 나의 뿌리가 없다는 사실이 두려워졌다. 책임 없는 삶은 실체 없는 삶이라는 말을 누가 했더라? 틀림없이 어떤 신성한 척하는 얼간이가 그 말을 했을 거야. 아무튼 그는 진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 339
데드 하트 -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밝은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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