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평

에세이 베스트셀러 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

반응형

에세이 베스트셀러 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

 

 

※letter. S

 

2012년 첫 직장을 시작으로 어느새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해서 그랬는지 다른 사람의 직업 체험기가 신간으로 나오면 장바구니에 담아 주문해서 읽곤 해

 

체험해보지 않았던, 체험하려고 상상조차 못했던 타인의 직업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세상은 넓고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특히 전문 작가가 아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쓴 직업 에세이 베스트셀러를 읽을 때면 매일 같이 글을 쓰는 나는 글쓰기 실력이 왜 아직까지도 그대로인가 싶기도 하고,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가장 먼저 책 제목에 이끌렸어. 죽은 사람의 집을 청소해주는 거라니, 듣기만 해도 무섭고 쉽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의 에세이를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사야할 이유로 충분했어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의 저자인 김완이라는 분은 대학교를 다닐 당시 시를 전공했다는 거야. 시 전공자의 직업 에세이 베스트셀러는 여태껏 읽어보지 않아서 더 끌렸던 것 같아. 세 번째 이유는 특수청소부라는 처음 보는 직업에 대해 알고 싶기도 했고.

 

김완 작가가 쓴 '죽은 자의 집 청소'는 첫 페이지를 읽을 때부터 시중에서 흔히 나오는 에세이와 뭔가 달랐어. 문장력이 있다고 해야 할까, 시 전공자답게 특수청소부를 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비유한 문장을 보니 매일처럼 블로그에 글쓰는 입장에서 배울 점이 무척 많았어

 

이 책은 1장부터 2장까지 총 24개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데 일반 청소업체가 아닌 죽음 현장을 수습하는 특수청소부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 알게 됐고, 현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한 40대 중반 남성의 생각을 보면서 나 역시 내가 가지고 있는 직업이 타인에게 있어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들게 되더라

 

죽어서도 생전에 육체를 남길 수밖에 없고, 누군가는 그 육체가 남긴 현장을 정리해야 하는 인생, 나 역시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

 

김완 작가의 '죽은 자의 집 청소'는 에세이 베스트셀러로 올해 가장 감명깊게 읽었고, 각 에피소드마다 그가 특수청소부를 하면서 생긴 사연을 시적인 표현으로 담아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

 

서점이나 온라인 도서 쇼핑몰에서 읽을 만한 에세이 베스트셀러 책을 찾는다면 일상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특수청소부의 직업 체험기를 담은 이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기억하고 싶은 구절

 

#1 자살 직전의 분리수거라니,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이전에 다른 자살자의 집에서 번개탄 껍질을 정리해둔 광경을 본 적은 있지만, 이것은 너무나 본격적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차고하탄에 불을 붙이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중에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고? 그 상황에서 대체 무슨 심정으로?

 

자기 죽음 앞에서조차 이렇게 초연한 공중도덕가가 존재할 수 있는가. 얼마나 막강한 도덕과 율법이 있기에 죽음을 앞둔 사람마저 이토록 무자비하게 몰아붙였는가 - 25

 

#2 방호복을 덧입고, 플래시를 켜서 한 손에 들고는 열린 문틈으로 먼저 발 하나를 들여놓는다. 마음 단단히 먹자. 용을 잡으러 던전에 들어서는 검투사의 투구라도 빌려온다면 좀 침착해질 수 있을까? 어둠 속에서 왼손으론 거미줄을 걷어내며 이리저리 빛을 비춰본다. 누군가의 집이 아니라 거대한 쓰레기통 안에 들어온 것 같다.

 

오래 침작해 있던 수많은 쓰레기는 내가 들어서자 케케묵은 먼지를 일으켜 환영 인사를 건넨다. 먼지라기엔 밀도가 놆아서 차라리 모래 공기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오늘 황사의 진원지는 고비사막이 아니라 대한민국, 어둠 속의 방지하 주택이다 - 33

 

#3 이 비정한 도시에서는 전기가 끊어지면 삶도 끝나는 것일까? 독촉이 이어지다 마침내 전기가 끊긴 날, 그는 사람 키보다 높은 냉장고 앞에서 목을 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한민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자동차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주차된 지역, 주거비가 비싸기로 소문난 이 동네에도 경제적인 결핍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가난은 차별도 경계도 없다. 모든 생명체에 들이닥치는 죽음처럼,

 

이 죽음을 순수한 자살로 받아들여야 할까? 목숨을 끊은 것은 분명 자신이겠지만, 이 도시에서 전기를 끊는 행위는 결국 죽어서 해결하라는 무언의 권유 타살은 아닐까? 체납요금을 회수하기 위해 마침내 전기를 끊는 방법, 정녕 국가는 유지와 번영을 위해 그런 시스템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가? - 46

 

#4 생사를 놓고 고민할 만큼 인간을 궁지로 몰아붙인 지대하고 심각한 문제들, 죽은 이의 마지막 순간, 마지막 머문 곳까지 찾아와 암울하고 축축한 얼룩으로 물들인 가난이나 외로움 따위는 죽음의 문을 넘는 순간부터 아무런 가치가 없어지고, 그 아무리 중차대한 것조차 하찮게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 돼버린다면 참 기쁠 것 같다.

 

가난한 자들의 낡고 해묵은 살림을 치우다가 한순간 생각을 돌려서, 이제는 죽어서 홀가분해지고 비로서 걱저이 사라져 순순해졌을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저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상상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고 '흥, 내 가난 따위야 잠시 머물다 가는 구름 같은 것일 테지' 하며 걸음이 가벼워진다. 어떤 날은 예기치 않게 바람이 불어와 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쑥"하고 뜻밖에 민낯을 내밀 때도 있다고 반쯤 믿고 싶다 - 47

 

#5 든 페트병은 대체로 맥주처럼 밝은 갈색을 띤다. 서너 병만 남아 있었다면 치킨 전문점에서 배달해 온 생맥주처럼 보일 것도 같다. 검은색에 가까운 아주 짙은 색이 있는가 하면 레몬처럼 밝은 색, 그리고 시판되는 생수처럼 투명한 색의 오줌도 있다. 이 병 안에 든 오줌을 모두 부어서 한 데 모으면 대중 온천의 커다란 욕조 하나쯤은 가득 채울 것 같다.

 

시험 삼아 페트병 몇 개의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변기에 부었다. 묵은 오줌을 처리하는 일의 핵심 문제는 역겨운 냄새가 아니라 두통을 유발할 정도로 지독한 가스라는 결론, 우리는 서둘러 방진마스크를 벗고 방독마스크로 바꿔 썼다. 마치 인생 최고의 행운을 맞이하여 밤새 자축 파티라도 열듯, 병 열 개를 열면 그중 한두 개꼴로 샴페인처럼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이 천장을 향해 튀어올랐다.

 

바야흐로 빈티지 와인처럼 생산 시기별로 잘 숙성된 오줌을 따르며 축제를 벌이는 시간이다. 끝도 없이 뚜껑을 열어 오줌을 쏟아붓자니 허리가 쑤시고, 급기야 손목이 덜덜거린다. 허벅지까지 튀어 오르는 오줌 방울을 피할 재간도 없다. 방독마스크의 호흡 밸브 안쪽으로 땀이 고여 일하는 내내 짭짤하다. 가혹한 페스티벌이다 - 64

 

#6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만들어놓은 이해 불가의 쓰레기를 수습하러 온 나는 누구인가? 내가 이곳에 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이고, 지금 나는 무엇을 발견하려고 하는가? 그는 왜 나라는 인간에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굳이 내 판단의 사슬에 그를 옥죄어야만 하는가?

 

그의 쓰레기를 대신해서 치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삶에 산적한 보이지 않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 같다. 내 부단한 하루하루의 인생은 결국 쓰레기를 치우기 위한 것인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해답도 없고 답해줄 자도 없다. 면벽의 질문이란 으레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질문이 또 다른 질문을 끊임없이 초대하는 세계, 오랜 질문들과 새로운 질문들이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고 건배를 제창하느 떠들썩한 축제 같다 - 65

 

#7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이 죽음에서 고통과 절망을 보았다면, 여태껏 손 놓지 못하고 풀어온 내 인생의 고통과 절망을 꺼내 이 지하의 끔찍한 상황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

 

젊은 나이에 미쳐서 스스로 돌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한 불행한 남자를 보았다면, 마치 인생의 보물인 양 죽어버린 한 불행한 남자를 보았다면, 마치 인생의 보물인 양 부질없이 간직해온 내 과거의 불행함을 그 남자에게 그대로 전가하고는, 나는 결백하답시고 시치미 떼고 있을 뿐이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바라보듯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이 지하 방에 관해 알게 된 유일한 진실이다 - 101

 

#8 숨겨진 칼이 사랑의 상징일 거라는 생각은 너무나 감상적인지도 모르겠다. 칼이 그 자리에 있는 진짜 이유는 사실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칼이 사랑에 이르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사랑을 지향했다고 믿고 싶다. 관계를 절단하고 소멸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라도 억지로 연을 이어가려는 숨겨진 증거라고 믿고 싶다.

 

같으 날 태어나지는 못했더라도 세상과의 작별만은 한낱한시로 하고 싶은 소망, 부부가 생애 기억 가운데 단 하나만이라도 온전히 간직하려는, 그들만의 조금만 훈장 같은 것이라고 믿고 싶다 - 113

 

#9 누군가의 죽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삶, 죽는 자가 늘어날수록 활기를 띠는 비즈니스, 그 직업적인 아이러니를 떼어놓고는 이 일을 설명할 수 없다. 죄책감이 내가 발을 디디고 선 땅이다. 뒤돌아보면 언제나 죄책감 위에 새겨진 기나긴 발자국이 저 멀리에서 나를 따라오고 있다. 움푹 들어간 자국이 깊고 선명하다.

 

금파리가 공중에서 윙위거리고, 살 오른 구더기가 모퉁이마다 꾸물거리고, 송장벌레와 진드기가 기어다는 곳에서 '특별함'이라는 왜소하고 부질없는 조각들을 찾아서 줍느니, 태풍이라도 소환해서 남겨진 발자국을 지우고 싶다. 누구도 묻지 않는 죄를 스스로 지우도록, 나는 매일 밤 꿈속에서나마 용서의 순례 길을 나서야 한다 - 137

 

#10 외따로 떨어진 시골, 산티발 아래 후미지고 으슥한 집, 오랫동안 아무도 찾지 않아서 낡고 바스러진 집, 누군가는 성묫길에 오르다 무섭다고 진저리치며 멀찌감치 돌아갈지도 모를 흉가 같은 집, 하지만 그 집은 우리와 단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심장 뜨거운 인간이 터전으로 삼던 곳이다.

 

우리가 용기를 내어 한 걸음만 더 안으로 다가선다면 벽에 걸린 액자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부모를 에워싸고 환하게 웃는 형제자매의 가족사진과 빛바랜 상장들, 학사모를 쓴 딸의 앳된 얼굴, 도포 자락에 갓을 쓴 선대 어른의 근엄한 흑백사진, 첫 면회에서 어색하게 거수경례하는 군인 아들의 상기된 표정, 모처럼 떠난 여행지 바닷에서 노부부가 팔짱을 낀 채 어색하게 웃는 사진,

 

고단한 삶을 지탱하며 품었던 희망과 좌절, 자식을 도시로 떠나보낸 뒤 숱한 세월을 홀로 보내며 묵힌 오래된 그리움, 이 터전에서 한세월을 견디며 누렸을 작고 소박한 기쁨과 행복 같은, 그 집에 머물던 사람의 진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나면 오해는 시나브로 사라진다. 하물며 머리를 풀고 나타난 처녀 귀신도 안타깝고 억울한 사정을 털어놓으면 새로 부임한 원님이라도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도시의 외로움과 시골의 고독은 거리만 떨어져 있을 뿐 속내는 하등 다를 바 없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외롭다면 또 다른 누군가도 어딘가에서 홀로 외로울 것이다 - 164

 

#11 자살을 결심하고 그 뒤에 수습할 일까지 염려한 남자, 자기 죽음에 드는 가격을 스스로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건 남자, 도대체 이 세상에는 어떤 피도 눈물도 없는 사연이 있기에 한 인간을 마지막 순간까지 밀어붙인 것만으로도 모자라, 결국 살아 있는 자들이 짊어져야 할, 죽고 남겨진 것까지 미리 감당하라고 몰아세울까?

 

나처럼 온갖 일을 겪으며 매상에 동요가 없어진 무감한 자보다는 좀 따뜻하고 인간적인 사람과 대화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그가 마지막으로 건 전화였다면 말이다. 죽은 자의 집을 치우는 견적을 정확히 내겠다며 내가 건넨 질문 하나하나가 아직 살아 있던 그의 가슴 곳곳을 예리하게 찔러대는 송곳이 되지 않았는지, 건넨 단어 하나하나가 자기의 죽음을 실감케 하는 비정하고 뼈저린 암시가 되지는 않았는지, 그저 미안하고, 부끄럽고, 고개 들 염치도 없다.

 

신이 계신다면, 그 남자가 생전에 의지하고 믿었던 신이 어딘가에 계신다면, 지금이라도 그 품으로 불러 단 한 번만 따스하게 안아주실 수는 없는지, 욕실에 벌거벗고 선 채 울고 싶어도 눈물 한 방울 내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서 죄 없는 샤워기만 하릴없이 뜨거운 물을 쏟아내고 있다 - 197

 

#12 밤을 청하지 않아도 기어이 찾아온다. 밝아오는 아침을 누구도 외면하지 못하듯 어둠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단 하루의 유예도 없이 매일 밤 나를 방문할 것이다. 그것이 자연히 하는 일이다. 때로는 그 무심함에 질리고 때로는 그 변함없음에 안도한다. 그토록 장엄하고 공평무사한 밤이 찾아오면 모든 생각이 작고 부질없다 - 245

 

 

사은품★ 죽은 자의 집 청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