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평

글쓰기란 독자의 감정 이입을 이끄는 능력이 중요하다

반응형


그동안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면서도 매번 해왔던 일은 다름 아님 글쓰기였다. 동영상을 소개하는 카피라이터부터 무언가 소개하고 알려주는 기사 작성,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소개 글을 작성하는 일을 했다. 독서를 좋아해 한때는 독서 동아리를 운영하며 토론을 하거나 서로 책 정보를 교환하는 등 이제껏 독서와 글쓰기는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항상 부족한 건 글쓰기였다. 누군간 읽으면 읽을수록 글쓰기 실력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난 어느 순간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단어와 문장을 잃어버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인터넷을 보면 글자를 가지고 놀 만큼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데 '나는 왜 저렇게 쓰지 못할까?'라며 한탄스러웠던 생각도 났다. 그렇기에 글쓰기에 관한 책이나 글들을 보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을까 기대감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읽은 책인 유시민, 정훈이 작가의 '표현의 기술'은 글을 쓸 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청춘의 독서',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의 한국현대사' 등 그동안 유시민 작가의 작품을 관심 깊게 봤던 나로선 '표현의 기술'은 읽기 전부터 기대감이 높았다. 또한 언론사, 잡지 등에서 연재만화를 그리는 작가 정훈이의 그림들이 중간 중간 담겨 있어 지루함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표현의 기술'에서는 유시민 작가가 지난해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라는 강연을 하며 글쓰기에 대한 질문과 온라인 상담실에서 주고받던 말을 정리한 내용이 담겨 있다. 유시민 작가가 생각하는 글을 쓰는 이유부터 악플 대처 방법,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상대에게 전달하는 방법, 베스트셀러, 감정 이입, 표정, 비평과 그가 쓰는 '정치적 글쓰기'와 '여론 형성'에 대한 생각을 말해준다.


자기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은 말보다 글로 쓰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과 주장을 100% 상대에게 전달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말하기가 아닌 글쓰기가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에 유시민 작가는 글쓰기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확실한 주제와 함께 독자의 감정 이입을 이끄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독자가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글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글을 쓸 때 독자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야겠다.



'표현의 기술' 뒷부분에서는 정훈이 작가가 만화가가 된 이유부터 그의 일생이 카툰 형식으로 재미있게 담겨 있다. 학창시절 공부에 관심 없던 정훈이 작가는 삼수까지 했음에도 대학에 가지 못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만화의 꿈을 이어갔다. 고졸이라는 이유로 군대를 방위로 가면서 그곳에서 느꼈던 현실과 사회의 부조리함을 만화로 표현하면서 작가의 길을 걸어나갔다.


자신의 삶을 그림으로 재미있게 표현한 정훈이 작가는 유시민 작가가 말한 것처럼 표현의 기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다. 글을 쓰는 것이든, 말을 하는 것이든,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싶었다.


그동안 난 글을 쓰면서 상대에게 무언가 알려주려고 하기보단, 되지도 않는 글쓰기 스킬과 문장력에만 급급했던 건 아니었을지 반성도 됐다. 서평 하나를 쓰더라도 그 책을 읽지 않은 독자에 대한 배려심과 나의 주관적 해석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 나름 글을 쓰고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처지에서 유시민, 정훈이 작가의 책 '표현의 기술'은 앞으로의 글을 쓰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제 글쓰기의 목적은 언제나 '여론 형성'이었습니다. 내 생각과 감정을 남들이 이해하고 공감해 주기를,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무엇인가 옳은 일을 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썼다는 뜻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 13


제게는 '미학적 열정'과 '정치적 목적'이 중요합니다. 생각과 감정을 멋지게 표현하려면 언제나 미학적 열정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제가 원하는 변화를 주려면 되도록 아름다운 글을 써야 하니까요. 다른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건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정치를 하던 시절에 질리도록 겪었는데, 욕설과 악플을 견디는 게 쉽지는 않더군요. 죽은 후에 오래 기억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역사에 뭘 남기고 싶다는 욕망도 없고요. 그렇게 하려고 버둥거린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저, 살아 숨 쉬는 동안 열정을 쏟아서 멋진 글을 쓰고, 그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넓고 깊게 교감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 26


나를 표현하는 글쓰기와 여론 형성을 목적으로 한 글쓰기를 선명하게 나눌 수 있을까요? 나를 표현하는 것과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것 사이에 울타리를 세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훌륭한 생각과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한 글은 저절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정치적 목적을 잘 이루려면 아름답게 글을 써야 합니다. 저는 그 둘을 굳이 나누려는 태도 자체가 특정한 정치적 편향의 표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쓸 때는 오로지, 하고 싶을 말을 정확하고 실감나게 문자료 표현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닐까요? 무엇에 관한 어떤 내용을 무슨 목적으로 쓰든, 모두 다! - 32


말과 글은 사람의 세계관과 철학을 드러냅니다. '사회자유주의자'는 저의 세계관과 인생철학을 나타내고, '네모난 동그라미'라는 비판은 그 말을 했을 때 진중권 교수의 세계관과 철학을 보여 줍니다. 글을 쓰면 제 모습이 더 잘 보입니다.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주된 효과인지 부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글쓰기는 자기 성찰을 동반하는 것이죠. 글에 나타난 내 모습이 싫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반복해서 글을 고칩니다. 글을 고치는 게 아니라 제 자신을 고치는 작업이지요. 어떤 모습이 싫으냐고요? 무엇인가에 묶인, 틀에 박힌, 뻣뻣하게 굳은 모습입니다. 저는 그게 제일 싫어요 - 44


예술적으로 쓰고 싶다면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정해진 도그마보다 자기 자신의 눈과 생각, 마음과 감정을 믿는 게 현명합니다. 저에게 진보냐고 묻는 분들, 진보적 원칙을 글쓰기에 어떻게 반영하느냐고 묻는 분들께 솔직하게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않습니다. 사실에 부합하는가? 문장이 정확한가? 논리에 결함이 없는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인가? 독자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가? 그런 것만 살핍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하면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 근처까지라도 가져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말입니다 - 60


비판과 인신공격의 경계선에 있는 댓글도 무시합니다. 뒷산 약수터의 못생긴 바위를 보듯 무심하게 지나치는 겁니다. 내 스스로 고쳐야 할 것이 있다면 고치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것이 없으면 그냥 무시합니다. 그런 댓글은 누군가 나에게 쏜 화살입니다. 그걸 쏘지 못하게 할 방법은 없어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지 않으며 대부분 누군지도 모릅니다. 누군지 안다고 해도 멀리 있기 때문에, 그들이 쏘는 화살은 제게 닿지 못합니다 - 75


악플은 근원적으로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내 글이 없으면 답글도 없습니다. 선플을 기대하다가 악플이 올라오니 괴로워하는 것은 과욕 때문입니다. 누구나 선플만 쓰지는 않으며 세상은 내 생각을 온전히 품어 주지 않습니다. 논밭에는 잡초가 생깁니다. 아무리 부지런한 농부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눈, 귀, 코는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제멋대로 반응을 합니다. 악플도 내 맘속에 둥지를 틀면 내쫓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나를 가꾸지 않아서 잠초만 무성하게 키우는 꼴이지요. 우리는 남들이 주는 것을 안 받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물건을 주고받을 때 요리조리 살펴서 받는데 마음은 그냥 덥석 받고 맙니다. 마음도 살펴서 받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 82


말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제 대답은 내버려 두라는 겁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비난하는 가족과 친지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볼까요? 다른 사람이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 경우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아마 좋지 않을 겁니다. 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바꾸기 싫은데 남들이라고 바꾸고 싶겠습니까? 사람은 저마다 다른 인격체이며 독립해서 활동하는 정보 처리 주체입니다. 이해관계, 경험, 학습, 개인적 성향에 따라 똑같은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며 똑같은 정보도 다르게 처리합니다. 이미 지나고 있는 인식과 가치관에 잘 들어맞는 정보는 쉽게 수용하지만 날카롭게 충돌하는 정보는 배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뇌에 '폐쇠적 자기 강화 메커니즘'이 있다는 말, 혹시 들어 보셨나요? 그런 것이 정말로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미 믿고 있는 것과 다른 사실, 다른 이론, 다른 해석은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이나 글로 남의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것이죠. 사람은 스스로 바꾸고 싶을 때만 생각을 바꿉니다. 어린아이라면 모를까, 열다섯 살이 넘어 뇌가 이미 다 자란 사람은 그렇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요? 대화하는 것뿐입니다. 강요하지 말고, 바꾸려 하지 말고, 이기려고 하지 말고, 무시하지도 않고, 그 사람의 견해는 그것대로 존중하면서 그와는 다른 견해를 말과 글로 이야기하면 됩니다. 남이 내 말을 듣고 곧바로 생각을 바꿀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중 단 한 조각이라도 그 사람의 뇌리에 남아서, 지금 가진 생각에 대해 지극히 사소한 의심이라도 품을 수 있게 된다면 그 대화는 성공한 겁니다.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납니다. 자신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있지만, 바꿀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죠 - 95


자신을 표현하는 데 의미를 두고 글을 쓰면, 남들이 알아줘도 좋고 몰라줘도 괜찮습니다. 예술의 역사에는 당대의 대중이 어떤 예술가의 훌륭함을 알아보지 못한 사례가 흔하니까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예술가의 자부심으로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고 싶어서 글을 쓰는 사람은 혼자만의 자부심만으로는 일을 해나가지 못합니다. 대중과 솥ㅇ하고 교감하지 못하면 글을 쓴다는 게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도대체 누가 내 말을 듣는단 말인가? 그런 회의에 사로잡히면 글쓰기가 어려워집니다 - 101


정치적 글쓰기는 사악함과 투쟁하는 일이 아니라 어리석음을 극복하려고 하는 일입니다. 사악함과 어리석음은 모두 인간의 본성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승산이 높은 것은 어리석음과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리석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노력하면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덜 어리석어질 수는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바꾸려면 우리 자신이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덜 어리석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을 씁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덜 어리석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누군가가 있어서 내 글을 읽을 것이라는 희망으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어떤가요? 정치적 글쓰기, 인생을 걸어 볼 만한 가치가 아주 없지는 않죠! - 102


나는 누구인가? 이름을 묻는 게 아닙니다. '나'라는 철학적 자아의 특성이 무엇인지 묻는 겁니다. 인간 일반의 본성 위에 그 어떤 '자기만의 것'을 세웠는지 말하라는 것이죠. 질문은 간단한데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하려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지해야 해요.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 사회를 보는 관점,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 내게 중요한 욕망과 그것을 실현하려고 선택한 방법,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이 어떠하며 그게 남들과 얼마나 다른지 알아야 합니다. 이걸 모르면 남을 흉내 내는 글밖에 쓰지 못해요 - 106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인생 텍스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텍스트는 경력, 성장환경, 경험, 인간적 개성, 능력, 성격의 특징과 장단점뿐만 아니라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계획, 포부, 소망도 포함합니다. 남들은 이 텍스트 전체를 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대학의 신입생 선발 업무를 하는 사람은 지원자의 인생 전체를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어떤 지원자가 공부를 열심히 잘할 사람인지 알아보려고 하죠. 기업의 인사담당자도 마찬가지로 회사 업무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하는 데 필요한 정보에 관심이 있고요 - 117


저는 글을 쓸 때 제일 먼저 주제를 확실하게 정합니다. 사람들이 관심이 많은지 여부보다, 쓸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인지 여부를 먼저 생각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라고 해도 제가 쓰고 싶지 않으면 쓰지 않습니다. 쓰고 싶고 또 의미도 있다 싶은 주제를 찾으면 관련 자료를 읽으면서 글을 구상합니다. 초고는 빠른 속도로 씁니다. 문장의 멋보다는 내용을 채우는 데 초점을 두고 쓰기 때문에 초고의 상태가 좋을 리 없죠. 초고가 다 되면 그때부터는 횟집 주방장이 칼을 버리는 것처럼 내용과 문장을 다듬어 나갑니다. 이건 중요한 주제니까 명료한 문장으로 독창적이고 흥미롭게 쓰기만 하면 사람들이 많이 읽을 거야! 그렇게 믿으면서 말입니다. 정성을 쏟는다고 해서 반드시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아니더군요. 정성을 다하는 건 기본이고,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운도 따라야 합니다 - 129


글은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문자 텍스트입니다. 그런데 독자는 나와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내가 쓴 텍스트를 나와 똑같이 해석한다는 보장이 전혀 없습니다. 내가 글에 담은 생각과 감정을 독자로 똑같이 읽어 가도록 하려면 그에 필요한 콘텍스트를 함께 담아야 합니다. 글쓴이가 독자에게 해석의 자유를 무제한 허용하는 문학 글쓰기라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겠지만, 정보 교환과 소통, 공감을 목표로 하는 생활 글쓰기와 논리 글쓰기라면 그렇게 써야만 제대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142


글쓰기 실력 향상을 목적으로 삼아 책을 읽는다고 해서 결과가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독서는 간접 경험이에요. 제대로 간접 경험을 하려면 글쓴이에게 최대한 감정을 이입한 상태로 글을 읽어야 합니다.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독해해야 한다는 말을 잘못 해석하면 안 됩니다. 일정한 시림적 거리감을 두고, 어디 뭐가 틀렸는지 한번 볼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 감정 이입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간접 경험을 제대로 할 수가 없죠. 독서는 타인이 하는 말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책을 쓴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 그 사람이 펼치는 논리, 그 사람이 표현한 감정을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겁니다. 평가와 비판은 그 다음에 하면 됩니다. 저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고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글 속으로 들어가 더 많이 배우고 느끼고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읽어야 평가와 비판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이입해서 책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다음, 자기 자신의 시선과 감정으로 그 간접 경험을 반추해 보는 작업이 비판적 독해라는 말이지요 - 153


책을 읽다가 무릎을 탁 치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 이거야! 이 사람, 어쩜 이렇게 나하고 꼭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 느낌이 들면 감정 이입이 된 걸까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책은 독자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말을 들려주고 볼 준비가 된 것만을 보여 줍니다. 내가 듣고 보는 것이 그 책이 가진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지요. 훌륭한 책일수록 그 불일치는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독서보다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만나고 평소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도 듣는 독서가 낫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눈으로 텍스트를 읽는 것을 넘어 다른 노력을 해야 합니다 - 163


저는 서평이라면 두 가지를 반드시 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에 대한 '객관적 정보'와 비평하는 사람의 '주관석 해석'입니다. 서평은 책 자체를 정확하게 소개해야 합니다. 누가 무엇에 관한 쓴 책이며 그 특성은 어떠한지, 책에 대한 핵심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소로의 '시민의 불복종'을 읽고 블로그에 서평을 올렸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책을 읽은 사람만 서평을 보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무슨 책인지 모르면서 서평을 보는 이가 더 많을 겁니다. 일단 어떤 책인지 최대한 객관적이로 정확하게 소개해야 읽는 이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서평은 또한 책을 읽은 소감, 해석, 평가를 담아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책 소개일 뿐 서평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쓴 서평을 읽으면서 같은 텍스트를 다르게 해석하는 시각을 만나게 됩니다. 생각의 차이를 확인하고 어느 쪽이 타당한지 따져 보면서 사유의 폭과 깊이를 더해 나갑니다. 바로 이것이 서평이 지닌 가치가이며 서평 쓰기에 도전하는 분들이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 217


글을 잘 쓰려면 문장 쓰는 기술, 글로 표현할 정보, 지식, 논리, 생각, 감정 등의 내용, 그리고 독자의 감정 이입을 끌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어느 것이 제일 중요할까요? 독자의 감정 이입을 끌어내는 능력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글쓰는 기술은 외모입니다. 롱다리, 브이라인, 에스라인, 빨래판 복근 같은 것이죠. 내용은 사람이 가진 것이에요. 체력, 돈, 재능, 지식입니다. 감정 이입 능력은 성격, 마음씨,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죠. 사람들은 흔히 외모를 부러워하고 돈과 지식을 선망하지만 행복한 삶을 사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성격과 마음씨와 인생관입니다 - 231


여러분은 이 세상을 위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에 살러 온 존재입니다. 사람마다 가지고 태어난 특성과 환경은 다르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해서 의미 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노력하고 분투하고 즐기면서, 각자 자기답게 살아가기를, 그런 삶을 누릴 기회가 여러분 모두에게 찾아들기를, 그리고 살아가면서 하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을 글로 자유롭게 표현하며 살아가기를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 250


표현의 기술 - 10점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생각의길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