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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문상훈 책 에세이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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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훈 책 에세이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를 구독하기 전 문상훈이라는 분을 알게 된 건 우연히 보게 된 한 영상이었다. 직업을 가지고 강의하는 사람들보다 더 전문적이고 알기 쉽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개그맨, 배우로 활동하는 사람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지난해 방송됐던 드라마 'D.P'(김루리 역)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김정훈 역)에도 출연했던 문상훈은 현재 유튜브를 통해 문쌤이라는 한국지리 일타강사 캐릭터로 활동하고 있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을 당시에는 유명 인터넷 강의 업체 회장과 만나 스카웃 제의까지 받았다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실제 그의 빠더너스 강의 영상을 보면 납득이 될 정도다.

문상훈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을 공개할 때면 유튜브에서 보여준 것과는 또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그가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이라는 에세이 책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당시 나름대로 빠르게 예약구매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며칠 전 초판 2쇄를 받고 2024년 첫 책으로 읽게 됐다.

약 150페이지에 달하는 에세이 책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에서는 문상훈이 평소 가지고 있는 생각과 과거에 기록했던 내용을 통해 총 3부로 나누어 독자들에게 말해준다.

코미디언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있어 웃음이라는 것과 행복, 일상에 대한 생각을 담아냈는데 평소 시를 좋아하는 사람답게 여러 비유적인 표현법을 보면 평소 그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문상훈 책 뒷부분 추천의 글을 쓴 유병재의 말처럼 낮에 모아 밤에 펼쳐냈을 단어가 책에 담기기까지 얼마나 처절하고 웃겼을지, 아직 쓰지 않은 단어들이 부럽다는 말을 보면서 글쓰기란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 있었다.

나 또한 빠더너스 문상훈처럼 꾸준하게 일기 작성과 글쓰기를 하고 있지만 내 머릿 속에 담긴 생각을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

새해를 맞아 읽기 좋은 에세이 책을 찾거나 평소 일상에 관한 글쓰기를 어떻게 풀어내고 쓰면 좋을지 고민이 있는 분들이라면 아래에 적힌 구절을 참고하고 문상훈 에세이 책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으로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일기장을 덮어놓고 천장을 보면서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는 외로움에 대해 생각한다. 기분도 남 눈치 보면서 들고 생각도 다른 사람 허락받고 하다니.

취향과 호오의 기준이 내게 없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정말 좋은 건지 자꾸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게 된다. 나는 뭐 하나 하려고 해도 늘 누가 옆에서 지켜봐 주어야 한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문득 외롭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 중에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라는 것도 알겠고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는 말도 어렴풋이 알겠는데,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는 것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 어렵다.

나는 누군가 보고 있다고 해야지만 춤 비슷한 것이라도 나올 것 같기 때문이다. 처음 타보는 두발자전거 뒤에서 아빠가 잡아주고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만 자전거 페달을 밟을 수 있는 어린아이에서 한 발짝도 성장하지 못한 것이다.

언제까지 누굴 앞에 앉혀둘 수는 없으니 혼자 해 버릇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과, 습관처럼 뒤를 돌아보며 아빠를 확인해야만 하는 불안감이 동시에 든다.

결국 나는 오늘도 일기를 다 완성하지 못하고 덮는다. 나는 언제쯤 누가 보지 않는다 해도 스스로를 잘 들여다볼 수 있을지, 커가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 35

밤에 그린 낮의 그림들과 낮에 적어낸 밤의 반성문들을 구태여 구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밤이 되어야만 밤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을 더 사랑할 것 같다.

낮에 스텝이 꼬이면 그 스텝을 풀어내려 바보같이 밤까지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 밤에 쓴 글은 그다음 날 밤이 되어야만 퇴고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매일 밤 반성을 하고 후회를 하고도 또 내일 같은 실수를 하겠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자는 다짐은 밤만 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이들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다.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도 그냥 그렇게 하는 그들 옆에 앉아 같이 밤을 세우고 싶다. 오랫동안 다닌 사우나의 단골들처럼 익숙하게, 암묵적으로 정해진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각자의 모래시계를 바라보는 것, 하루가 얼마나 더러웠는지, 네가 미웠고 내가 잘했는지, 혹은 반대였는지 속으로 생각하며 모래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다 - 48

스무 살이 지나고 꿈의 크기와 미련의 크기가 역전되어가는 과정을 넘기면서 그 시절을 자주 회상한다. 꿈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미련의 크기는 커질수록, 내가 소년일 때 배웠던 낮과 밤의 지식들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는지 보따리를 뒤적이게 되는 것이다.

담아 두었던 세상의 진짜 이야기 중 나는 지금 어디까지 확인했고 무엇이 남아있는지, 하굣길에 마중 나왔던 보도블럭과 친구들의 웃음소리는 여전한지 궁금하다.

어른들은 학창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공부는 다 때가 있다고들 하고,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내 경우를 생각하면 그때가 아니었다면 언제 또 그 열정으로 웃음과 유행을 탐닉했을까 싶다. 십 대의 질투와 결핍, 세상을 알고 싶은 마음보다 더 강한 동력이 있을까.

6년 남짓한 교복 시절을 자양분으로 평생을 먹고산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정하고, 더 알아가고 싶은 호기심과 잘하고 싶은 욕심은 십 대 때 듣던 라디오와 친구들의 웃는 얼굴에서 찾았다.

가끔 길에서 만나게 되는 교복 입은 친구들에게 내가 뒤늦게 알게 된 것들을 전해주고 싶다. 아니, 사실 제일 먼저 말해주고 싶은 사람은 두말할 것 없이 2000년대 중반의 소년 문상훈에게 - 53

커가면서 알게 된다는 세상 물절과 현실, 한계를 되도록 모르고 싶다. 내 능력으로 안 되는 것과 되는 것을 분간하지 못해서 바보같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말이 겸손의 너스레가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게 믿어서 실패할 때의 데미지가 작았으면 좋겠다. 성공이 어색하고 실패가 익숙하면 좋겠다.

시도해온 일들보다 도전해볼 다음 기회가 훨씬 더 많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살다가 내가 나이가 들어 더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때가 왔을 때 그 이유를 싱겁게 나이나 세월에서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는 것을 인생의 패배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고 도전할 힘도 용기도 없는 것을 굴복으로는 더더욱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 58

어떤 분야에서 실력 있는 사람의 조건 중 하나는 내 실력이 부족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상대방을 실망시켰을 때 더 자신을 객관적으로 내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해야만 그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실망할 때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나에 대한 기댓값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의 좌절감은 익숙해지지 않지만, 오히려 더 정확한 값을 위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혼잣말을 삼키기로 한다.

업다운 게임은 적은 시도로 정답을 맞히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한 숫자를 알아내어 필요할 때에 외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매일 스스로와 상대방에서 실망하고 실망시키며 답을 찾아갈 것이다 - 66

좋아하는 마음은 더 은은할수록 아름답지만 서운한 마음은 가장 적나라하게 파헤칠수록 잘 전달된다. 나는 반대가 좋은데,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가장 구체적으로, 나를 싫어하는 이유는 은은하게 돌려서 듣고 싶은데 자꾸 반대로 해야 한다.

팔다리가 찢어진 상황에서도 차분함을 잃지 않고 내 감정들을 공항 검색대 위에 짐처럼 바리바리 다 꺼내 놓아야만 이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매번 서글프다.

그럼에도 꺼내 놓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오해 없이 잘 설명하려면, 내 감정의 경위서를 먼저 작성하고 그 마음들을 공감 받으려면,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지내려면, 아 나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납득 가는 수준의 감정으로만 세상을 살고 싶다 - 80

내가 만약 죽기 직전에 삶에 대한 미련이 크다면 그것은 쌓아 놓은 돈이나 남겨둔 가족들 때문이 아니라 그 돌들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좋았던 기억은 좋아서 동그랗고, 불행했던 기억은 자꾸 매만져서 동그래진 그 돌들, 원래 모양이 어땠는지 구분할 수 없다. 무엇을 두고 가고 무엇을 두고 갈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다 들고 가고 싶은데 내 힘으로 들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기억을 하나라도 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죽기가 싫다.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해도 삼십 년 남짓의 웃고 울었던 기억들이 아까워서 죽기 싫은데, 시간이 오래 흐르고 난 뒤에 죽는다면 얼마 슬플지 벌써부터 무섭다.

내가 죽는 순간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좋은 기억이 될 테니 그 기억까지 가져가고 싶다.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내 모든 기억들 - 84

내가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행복은 많지 않다. 행복했던 기억 속에서 내가 했던 행동이나 상황을 재현해볼 뿐이지 행복한 감정을 늘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웃음이나 즐거움의 호르몬이 나오는 것을 보고 쉽게 행복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문득 행복했었구나 하고 떠오르면 그것이 행복이다.

그래서 행복은 늘 결과론적이다.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도, 지금이라고 짚어줄 사람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도 없는데 우리 모두는 너무 쉽게 행복을 바라고 강요해 온 것은 아닐까.

인생의 목적이나 태어난 이유 같은 것들을 말할 때 반드시 빠지지 않는 행복이 어쩌면 가장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염세적인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물질만능주의 같은 부정적인 것의 반의어로 행복하면 됐다는 말을 해왔는지도 모른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가 돈도 아니고 비겁한 승리도 아니고 행복이라니,

행복이라는 깃발 아래에서 우리는 그 과정을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지경인 것이다. 행복은 결과나 과정과 상관없이 맨 앞에 있는 우선순위가 된다 - 89

네가 밉다고 할 때는 다섯을, 사랑한다고 할 때는 열을 세고 말하기로 한다. 말이 앞서고 글이 앞서서 솔직하지 못했다는 말을 자주하기로 한다.

상대의 표현이 서툰 것을 보고 마음이 작다고 여기지 않는 사려가 있으면 좋겠다. 내 비유와 언어유희가 또 내 마음을 새치기 했다고 알려주기로 한다.

내가 미안한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운 사람에게 저울질한 마음 만큼만 내밀기로, 그 마음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받아들이며 살기로 한다. 겉껍질이 아니라 알맹이가 커진 마음을 더 여러 사람에게 더 솔직하게 내밀 수 있게 내가 더 깊어지기로 한다.

드는 생각과 기분을 다 이야기 하지 않고 그냥 그 앞에 조용히 두고 오는 법을 알아가기로 한다. 오늘 밤에는 꼭 - 123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난시 같아서 너무 가까우면 두 개로 번져 보이고 너무 멀어도 흐릿하게 잘 안 보인다. 연인들이 서로를 자세히 보고 보이고 싶은 마음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싸우고, 너무 멀리 벌어지면 그대로 멀어진다.

사랑에는 거리 조절이 중요하다. 혼자 하는 사랑은 가장 잘 보이는 거리에 너를 두고 마음의 초점을 맞추면 된다. 좋아하는 식물처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오래오래 기뻐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너를 더 잘 사랑하게 된다.

널 사랑하는 마음 이전에 존중하는 마음으로 널 대한다. 짝사랑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을 먹고 자란다. 꽃을 꺾는 사람을 두고 꽃을 사랑한다고 하지 않는다.

원래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꽃다발도 잘 사지 못한다. 열렬히 사랑하다 잘 삼킨 짝사랑도 뜨거운 연애만큼 오래 기억된다. 혼자 하는 사랑을 해봐야, 잘 해봐야 서로 하는 사랑도 잘 할 수 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젠 안다. 그래서 일기장에 적힌 그 이름들이 고맙다 -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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