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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존감 수업'으로 자존감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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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자존감 수업'을 쓴 윤홍균 의사님은 정신과 의사로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해 동대학교 의과대학원과 박사 과정을 마쳤다. '경향신문', '한국일보', '레이디경향', '월간 생로병사' 등에서 글을 썼으며, EBS '부부가 달라졌어요' 자문의, 교통방송 '귀로 듣는 처방전'에서 상담의로 활약했다. 블로그를 통해 정신과에 찾아오기 주저하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윤답장' 선생님으로도 유명하다.



# 책을 읽은 이유


나는 평소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을 할 때 기대를 하면 최소 한 가지는 실망을 겪었기에 애초에 기대를 자주 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계속해서 자존감이 떨어질 테고 그만큼 나에게 다가올 행운과 기회가 멀어질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찰나에 인터넷 도서 쇼핑몰에서 우연히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을 알게 됐다. '자존감을 올릴 방법을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고 책을 읽게 됐다.



# 줄거리


윤홍균 의사가 쓴 '자존감 수업'은 자존감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자존감이 중요한 이유부터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들의 특징, 자존감과 인간관계, 자존감을 방해하는 감정, 자존감 회복을 위해 버려야 할 마음 습관, 자존감 회복을 위해 극복해야 할 것,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다섯 가지 실천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주제마다 자존감 회복을 위해 실천해야 하는 것들로 마무리가 되는데 그냥 책을 읽고 덮기보다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다면 윤홍균 의사님이 알려주는 셀프 코칭을 따라 하는 것이 좋겠다. 모든 자기관리 책과 마찬가지로 '자존감 수업' 역시 그냥 책만 읽어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느낀 점


'자존감 수업'을 고른 대부분의 독자들은 아마 대부분 남보다 자존감이 낮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골랐을 것이고 윤홍균 의사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책을 읽을 것이고 나 또한 그랬다. 책을 읽는 동안 자존감이 떨어지는 이유와 그로 인해 벌어지는 상황들을 나와 대입하였더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인생을 살면서 다가오는 여러 기회를 놓치는 점은 분명 자신에게 있어 손해일 것이다. 그렇다고 자존감을 갑자기 끌어올릴 방법은 없다. 다이어트를 하는 것처럼 꾸준히 실천해야 하며 갑작스러운 변화로 저항이나 거부감이 온다 하더라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자존감 수업'에서 윤홍균 의사님은 낮은 자존감이 어린 시절 부모님의 잘못된 양육 방식이 이유가 아니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 남들처럼 자라지 못해 자신의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자존감은 노력으로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존감이 떨어져 있다. 학업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이나 학점 관리나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대학생 및 취준생,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이 길이 맞을까 고민하는 직장인, 아이를 가진 엄마, 가정을 지켜야 하는 가장 모두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며 지신이 진정 하고 싶을 것을 잊고 살아간다.


이로 인해 자존감은 점점 떨어지게 되며 무엇을 하든 부정적인 면만 생각해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들어오는 기회를 피하게 되고 자기 자신이 더욱 못나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존감 수업'은 눈으로만 읽는다고 해서 바로 자존감이 올라가는 마법의 책이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다면 윤홍균 의사님이 알려주는 자존감 셀프 코칭법을 따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냥 눈으로만 책을 읽어서는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을 것이며 이 책이 아무 필요 없다며 오해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 이 책을 읽어본 내가 생각하는 바는 자존감이란 정말 어렵고 힘들지만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발간되자마자 인터넷 쇼핑몰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독자들에게 있어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은 자신의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책에 나온 여러 실천법을 모두 따라 하는 것은 힘들 수 있지만 그중에 한 가지라도 조금씩 실천한다면 아마 인생이 더욱 즐거워지지 않을까 싶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자존감에는 세 가지 기본 축이 있어서 사람들마다 자존감의 의미를 달리 해석하기도 한다. 세 가지란 자기 효능감, 자기 조절감, 자기 안정감이다. 우선 '자기 효능감'은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느끼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 사회는 이 축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사회에서 알아주는 직업을 갖거나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당연히 자존감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두 번째 '자기 조절감'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본능을 의미한다. 이것이 충족돼야 자존감도 높아진다. 서울에서 손꼽히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이른바 명문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존감이 당연히 높을 거라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시골에서 자유롭게 뛰놀며 자란 사람보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자기 조절감이 부족한 경우다.


세 번째 '자기 안정감'은 자존감의 바탕이 된다. 가진 것은 별로 없어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능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 트라우마가 해결되지 않았거나 애정결핍이 지속되는데 안전하다고 느낄 사람은 없다. 당연히 자존감이 떨어진다. 혼자 있는 것을 유난히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혼자서는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 17


부모의 양육 방식이나 어릴 적에 받은 대우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자존감이 순전히 부모의 영향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흔히 '부모님의 사랑을 덜 받아서 자존감이 낮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집착했다간 자존심 회복은커녕 가족 사이에 불화만 커진다. 뒤늦게 부모가 사과를 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자존감은 셀프로도 회복할 수 있다 - 19


자존감은 감정이 아니다. 감정과 연결돼 있지만 정확하게는 이성의 영역이다. 자존감을 회복했다고 해서 기분이 방방 뜨고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존감이 회복되면 좀 더 담대해진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평일에 파김치가 되어 들어와도 주말까지 망쳐버리지는 않을 수 있다. 월요일 아침은 피하고 싶을지언정 그게 걱정되어서 일요일 저녁까지 날려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 20


누구를 미워하거나 무관심한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가까운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문제다.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거나 연인에게 무관심하면서 행복하기란 어렵다. 가족이나 회사 동료 중 미운 사람이 있어도 마음은 불편해진다. 부부간의 무관심은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하물며 그 싫어하는 대상이 자신이라면 어떻겠는가, 말하고, 행동하고, 먹고 잠자는 모든 순간 싫은 나와 마주해야 하니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싫어하는 인간의 모습을 봐야 하니까 말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런 이유로 알게 모르게 짜증이 나 있다. 무기력한 내가 싫고 키가 작은 내가 싫고, 성격이 모난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럴 때마다 서슴지 않고 자신을 비난하고 남들과 비교한다. 생각해보라. 누군가 내 등에 업혀서 하루 종일 나를 비난하고 남들과 비교하면 어떻겠는가? 어떤 장치가 귀에 꽂혀 속삭이듯 "너는 못났어. 너는 남들보다 무능해"라고 세뇌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남에게 비난을 들으면 도망이라도 칠 수 있는데 자신을 미워하면 그게 안 된다. 하루 종일 잔소리를 듣게 되고, 그 경험이 쌓인다. 숱한 비교와 비난 속에서 자존감이 낮아진 사람은 생각이 자꾸 비관적인 쪽으로 흐르기 쉽다 - 40


인생을 조금 편하고 살고 싶다면 평소 자신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자주 해줘야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남들과 경쟁하고, 비교하고, 비난당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를 이상하고 부족한 사람으로 매도해왔다. 우리의 자아는 억울함과 슬픔에 빠져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위로를 해주어야 한다. 혹자는 "그러면 너무 자기안위에 빠지는 거 아니냐"라고 물을지 모른다. 좋은 질문이다. 그렇지 않다. 게다가 그동안 자신을 너무 못살게 굴었거나 억압해왔다면 더 그렇게 말해줘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잘못된 사회 탓이고 잘못된 교육 탓이다. 투사해도 괜찮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에게 관대해져야 하고 합리화 해야 한다. "자기안위에 빠져도 괜찮아"라고 말해줘야 한다. 자존감이 낮아져 있어도 괜찮다. 그 덕에 더 노력할 수 있었고, 때론 무기력에 빠져 쉬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그저 "괜찮아. 그동안 수고했어"라고 얘기해주면 된다. 지금 당장 그게 되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우린 이제 첫발을 떼었을 뿐이니까 - 42


사귄 지 1년이 지나도 싸움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각자 자존감을 체크해야 한다. "우린 싸움도 자주 하지만 화해도 잘해"라고 말하는 커플이 있는데,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다. 격렬하게 싸우고 뒤끝 없이 마무리한다 해도 우리의 뇌와 피부는 그 횟수만큼 시들어간다. 싸움에서 이겼다고 해도 문제다. 제압한 상대가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뛰어난 언변과 논리로 남편을 제압한 부인은 '남편은 나보다 논리적이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긴 기쁨은 잠시뿐, 논리적이지 않은 남편과 사는 자신에게 만족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진 쪽은 더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말싸움에서 밀리든 힘에 밀리든 제압을 당한 쪽은 자괴감에 빠진다. 사랑 표현을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공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커플은 팀이다. 아무리 좋은 팀이라도 불화와 갈등은 있다. 하지만 팀 킬은 가장 어리석다. 시비를 가리고 공격을 주고받는 사이 팀이 패배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억울하고 속상하겠지만 남의 눈에는 "저 팀은 형편없는 팀"으로 보일 뿐이다 - 52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사랑을 쉽게 끝내지 못한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참고 견딘다. 너덜너덜 상처를 입고 우울증에 빠져도 이별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가끔 듣는 사랑한다는 말이나 근거 없는 느낌에 기대어 심약한 사랑을 유지한다. '이 사람 말고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란 생각, '이별을 감당하지 못할 거야'란 생각은 전쟁 같은 사랑일지언정 완전히 끝나지 않도록 강력한 방어막을 친다. 이렇게라도 사랑하는 것 말고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무릎을 꿇는다. 그러면 자꾸 슬퍼진다. 내가 상담을 하면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슬픔과 사랑을 혼동한다는 사실이다. 화가 나서 눈물이 나고, 불안해서 우울해지고, 슬픔에 가슴이 미어지는 경험을 사랑으로 인한 아픔이라 고 생각한다. 그건 그냥 아픈 거다. 노래 가사처럼,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이별이 행복의 지름길일 떄도 많다 - 55


자존감 결여는 인간관계를 망치는 원인이 되지만 그 결과가 되기도 한다. 관계에서 트러블을 경험하고 그걸로 속상해하는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깍아내리면 그렇게 된다. '나는 쿨하지 못해', '프로답지 못해', '한 번 혼날 걸로 이렇게 오래 꿍한 거 보면 너무 감정적이야'라며 자신을 못마땅해 하는 식이다. 애석하게도 이것은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두려움이 폭발한 경우가 많다. 부모는 아이가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계속 예방주사를 놓는다고 생각한다. "너 이러면 사람들이 싫어해. 외톨이가 될 거야"라고 핀잔을 준다. 그 순간에도 아이가 두려워해도 그래야 사랑스러워지려고 노력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예방주사가 아니다. 거절이라는 병균이 침입했을 때, 항체가 되어 싸워야 할 자존감을 소진시키기 때문이다. 오히려 두려움과 불안이 핵심 감정이 되어 폭발해버리고 만다. 자기 머릿속의 오류들을 수정할 기회가 날아가버리는 셈이다 - 69


자존감은 '내가 내 마음에 얼마나 드는가'에 대한 답이다. 그러기 위해선 타인의 평가가 아닌 '자신의 평가'에 집중해야 한다. 다시 내 강연 얘기로 돌아가자면 요즘 나는 강연이나 발표를 할 때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책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힘들 때마다 펼쳐보기 위해서, 내 딸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쓴다. 그러다 보니 그전에 비해 훨씬 나에게 몰입하게 됐다 - 80


많은 직업들이 직장에서의 상황 때문에 자존감에 영향을 받는다. 앞서 소개한 직종에 있는 사람들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이때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직장은 낭망적인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직장은 힘든 곳이다. 그래서 월급을 준다. 그것도 날짜를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준다. 안 그러면 남아 있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직장이 그렇게 달콤한 곳이고 가치 있는 곳이라면 윌에게 돈을 줄 리 없다. 미안하니까, 나가지 말라고 돈을 쥐여준다. 물론 행복을 안겨줄 때도 있다. 힘들 때마다 힘이 되어주는 동료가 직장에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시적이라 궁극적인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조금 심하게 말해 직장은 우릴 이용하고 힘들게 하고 화도 나게 한다. 그래서 직장은 윌에게 미안해한다. 잘못했다며 한 달에 한 번씩 합의금을 준다. 월급은 '이만큼 줄 테니 부디 참아주세요', '당신의 시간을 이만큼 내가 썼으니 이걸로 대신하세요'라는 뜻의 위로금이다 - 88


나는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이 직장과 직업, 꿈을 좀 더 명확하게 구분했으면 한다. 나처럼 직업에는 만족하지만 근무하는 직장에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직업은 별로지만 지금 일하는 직장은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직장과 인생은 분리해야 한다. 우리는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직장이 우리 삶의 전체가 아니다.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현재 자신의 인생까지 불만족스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회사에서는 조금 잘 나간다고 타인의 자존심을 함부로 짓밟아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서 가이나리 퇴근 이후의 삶을 위해 살아간다. 퇴근 이후의 삶도 엄연한 인생이고 주말도 중요하다. 근무 시간에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까지 안고 오거나 못 다 한 회사 업무를 갖고 올 필요도 없다. 직장에 대해 오래 고민한다고 일이 해결되지도 않는다. 직장은 직장이다. 우리는 직장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가끔은 직장에서 떨어져 머리를 완전히 비워야 할 떄도 있다 - 89


어떤 한 가지 정체성에서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자신을 무가치한 사람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직장인인 내가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나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 된다. 며느리로서 내가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직장인으로서의 나까지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어느 한두 개에서 소홀하다 해도 연인으로서, 친구로서, 부모로서, 자원봉사자로서, 종교인으로서, 시민으로서의 존재는 남아 있다. 한 곳에서 존재감을 확인받지 못했다고 해서 인생 전체의 문제로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 96


결정을 잘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점을 알고 있다. 어떤 문제를 아무리 고민해봐야 정답은 없으며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어떤(what) 결정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정한 후에 어떻게(how)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결정을 잘하는 사람들은 결정하기까지 에너지를 많이 낭비하지 않는다. 결정 잘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능력은 '자신의 결정에 만족하는 힘이다. 그들은 타인의 무심코 내뱉는 말, 이래라 저래라 훈계하는 말, 질투에 섞인 비아냥 등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마음에 줏대가 있고 단단한 자기 기준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봐도 크게 이상한 결정을 하지 않는다. 주식 투자로 가진 돈을 몽땅 날려버리고는 '내 투자는 옳았어'라고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누가 봐도 상식적이고 함부로 뭐라 할 수 없는 결정을 한다. 처음부터 정답이 정해져 있던 것처럼 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결정에 만족한다 - 100


당연한 말이지만 불행했던 기억에 사로잡혀 있으면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 그런데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면 자연스럽게 과거의 기억 중 부정적인 사건만 떠오른다. 분명 중간에 좋았던 일도 있었건만 그것들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오랜 기간 싸우고 있는 부부를 만나면 이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사람은 늘 나를 속여요", "아내가 매일 저런 식이니 내가 밖으로 나돌밖에요" 결혼 만족도가 낮은 부부는 '항상', '언제나', '매일' 같은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이유가 있다. 이 단어들을 사용하면 과거를 낙인찍기 편해서다. "당신과 살면서 단 하루도 행복한 적이 없어"라고 결론 내면서 좋았던 기억은 굳게 닫아버린다. 과학의 입장에서 영역인 해마와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핵이 서로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플 때는 슬픈 사건 위주로 기억이 나고, 억울할 때는 과거의 기억 중 억울한 일만 떠오르게 된다. 여기에 중요한 힌트가 있다. 어떤 경험 때문에 괴로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감정적인 문제를 겪고 있지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나쁜 기억 때문에 우울한 게 아니라, 우울하기 때문에 나쁜 기억만 붙잡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사람은 당연히 자존감도 떨어진다 - 113


감정을 조절하는 행위는 자동차 운전과도 같다. 멋진 차를 가졌어도 운전을 못하거나 차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추고, 가고 싶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운전 기술이 필요하다. 운전의 기본을 익혔다면 상세 기술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발밑 오른쪽 페달을 밟으면 가속이 붙는다는 것, 어떤 버튼을 누르면 실내 온도가 올라가고, 어떤 버튼을 누르면 시동이 꺼진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 154


 우리가 창피함을 자주 느끼는 것은 몇 가지 인지적 착오 때문이다. 우선, 모두가 나를 보고 있을 거라는 착각이다. 단체사진을 연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소풍을 가서 단체사진을 찍으면 어김없이 나만 눈을 감고 있거나 못마땅한 표정이어서 속상할 때가 많다. 하지만 내가 내 모습만 신경을 쓰듯 남들도 자기 모습에만 신경을 쓴다. 사실 대다수는 내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화장이 떴는지, 눈을 감았는지에 관심이 없다. 두 번째는 자신의 모습을 지나치게 폄하하는 착각이다. 꼭 완벽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행동에 엄격한 편이다. 자신이 한 행동에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타인들은 내가 한 행동이나 변화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는 게 일반적이다. 내가 나를 평가하듯이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남들이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누군가 나를 두고 입방아를 찧었다고 가정해보자. 회사 동료들이 모여 내 험담을 표시하거나 사람들이 내 욕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 큰 충격을 받는다. 모욕감에 배신감에 사로잡혀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들에게 다른 사람 얘기는 단순한 가십거리, 한번 씹고 넘어가는 가벼운 주제일 뿐이다. 험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대상을 찾아 금세 관심을 돌린다. 사람들은 애당초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 163


대부분의 좌절은 그렇게 온다. 지금 상황이 문제라기보다는 그 일이 진행되고 진행돼서 파국으로 이어질까 봐 미리 걱정하는 게 문제다. 막상 자신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게 되면 문제는 대게 해결된다. 막연하고 모호한 불안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불안으로 변환하는 방법이다. 해결 가능한 불안이면 해결책을 세우면 되고, 불가능하다면 포기하면 된다 - 193


인간은 매일 한 차례 잠을 자는데, 어찌 보면 그때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가 되는 건지도 모른다. 밤에는 의욕이 사라져야 하지만 아침에는 의욕과 활동력이 생겨야 한다. 시작부터 거창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 대단한 걸 얻으려는 게 아니잖은가. 무기력해지는 습관에 변화를 주고 싶다면, 자세부터 바꿔보자. 목을 돌려보고, 굽었던 허리도 지금 펴보자. 기분이 한결 나을 것이다. 곧장 의욕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 생각 없이, 조금씩이라도 자주 움직이자. 지금 책을 덮고 잠깐 산책을 해봐도 좋겠다 - 204


열등감을 근본적으로 버리려면 사람이든 무엇이든 우월함과 열등함, 좋고 나쁨으로 구분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자와 장자의 철학이 이를 강조한다. 이들은 세상을 쓸모나 귀함으로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려준다. 장자 이야기 가운데 쓸모없는 나무에 관한 것이 있다. 집짓기에 좋은 나무는 찾는 사람이 많아 오래 크지 못한다. 하지만 쓸모없는 나무는 아무도 베어 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 걱정이 없다. 쓸모 있는 나무는 잘난 체를 하다가 일찍 베어지지만, 그렇지 않은 나무는 오래 살아남아서 동네 수호신이 되고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 213


심리적 문제에서 원인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문제 해결의 시작이지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완벽하게 파악하려고 애쓰지 말고,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대처할 에너지를 남겨놔야 한다. 어차피 확실하고 근본적인 원인이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미처 몰랐거나 오해했던 진짜 원인을 알면, 지금의 고통이 자기 탓이 아니란 걸 깨닫고 상처를 치유할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또한 앞으로는 그런 원인이 되풀이되지 않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원인 분석에만 머물러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 219


세상에 바꿀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타인과 과거다. 과거에 받아 현재까지 남아 있는 상처는 누구나 괴롭다. 그리고 잊기 힘들다. 안타깝지만 과거는 바꿀 수도, 지울 수도 없다.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우리를 괴롭히는 이유는 시간 개념을 뒤흔들어놓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끝난 일인데 마치 옆에서 일어나는 일 같은 혼동을 준다. 10년 전 강도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상당했는데, 그는 얘기하는 내내 출입구를 응시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저 문을 열고 그 강도가 쫓아올 것 같아요"라고 했다. 어릴 때 부모에게 받은 상처, 선생님에게 받은 상처, 친구들에게 당한 따돌림은 사실 다 지나간 일이다. 무시당하고 비교당했던 나는 '오래전 그날의 나'다. 그런데 여전히 '지금의 나'가 겪는 일로 생각하는 것이다. 상처가 괴로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처는 모두 과거형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음속 응어리가 승화되고 나면 이런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머릿속에 있을 땐 혼란스럽겠지만 막상 밖에 꺼내놓고 보면 다 지나간 일이라는 게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거기서 우리는 벗어났고, 지금은 안전하다. 우리를 괴롭힌 어른들은 이미 노인이 되었고, 우리가 더 강해졌다.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 242


자존감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분명 저항을 만난다. 그럴 때면 '그냥 예전처럼 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겸손함이 없어질까 봐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사랑하거나 자존감이 회복된다고 해서 갑자기 오만해지거나 왕따가 되진 않는다. 왜냐하면 자존감을 획득하면서 매너와 배려가 생길 것이고, 그것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존중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또 행복해지는 일이다. 우리는 행복해질 것을 믿어야 한다. 무시를 받는 것보다는 부러움을 받는 것이 확실히 행복하다. 동정을 받는 것보다는 질투를 받는 것이 더 행복하다. 누구의 보살핌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회복된 자존감은 누우에게도 손해나 상처가 되지 않는다 - 252


비난은 투사일 뿐이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남 탓을 하는 행동을 말한다. 투사는 미숙한 방어기제에 속한다. 승화나 유머와는 달리, 문제를 일으키고 생산적 활동으로 이저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달리다 넘어져 울음을 터뜨리면 부모는 "땅이 그랬지? 땅 나쁘다, 때지"하며 땅바닥을 친다. 그럼 아이는 덩달아 땅을 때리며 울음을 그친다. 비난을 하며 잠시나마 아픈 걸 잊는 거다. 물론 아이가 크면 더 이상 땅을 탓하지 않는다. 그런다고 아픈 다리가 낫지도 않고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는 걸 잘 아니까. 그런데 어른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판단력이 흐려지기 쉽다. 평상심을 잃을 정도로 괴로울 땐, 뇌가 일시적으로 퇴행하는 셈이다. 그래서 비난을 한다. 비난을 자주 하는 것은 마음이 자주 불편해서 퇴행한다는 뜻이고, 강하게 비난하는 것은 크게 퇴행한다는 뜻이다. 얻는 것도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건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마음이 너무 불편한 나머지, 그런 이성적인 계산도 서지 않는 것이다 - 258


성격 바꾸기를 목표로 삼으면 중간이 지칠 수밖에 없다. 변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내성적인 사람이 변하기 위해 모임에도 나가고,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혼자 있고 싶어질 때마다 그는 자신의 그런 특성에 주목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한 수많은 행동들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내성적인 특징을 느끼며 '역시 난 변하지 않았어'라고 받아들인다. 실제로는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런데 변하지 않은 것에 관심을 더 주다 보니, 그것이 강화된다. 성격이 변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성격에 집중'했기 때문에 변화가 멈춘 셈이다 - 267


문제 해결은 현재에 더 집중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here and now'라고 부르는 원칙이다. 지나간 문제나 앞으로 닥칠 문제를 생각하지 말고 지금 당장 할 일에 집중하라는 것. 이는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과정이다. 가령 매일 아침 일어나 운동을 하거나 닭가슴살로 다이어트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동안의 일정에서 벗어나 새 생활에 길들이는 작업이다. 그런데 아무리 지금 여기에 집중하자고 해도 궤도를 벗어나기 십상이다. '지금 여기'란 말이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미래 불안으로 가든지 과거로 회피하려고 한다. 그러지 않으려면 눈앞에 글씨를 적어놓아야 한다. 지금 당장 종이를 꺼내서 이렇게 적자. '지금, 여기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지금, 여기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러고서 그 답을 찾아나가야 한다. 답은 한 번에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 294


걷기, 표정 짓기, 혼잣말하기, 이 세 가지를 염두에 두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이 세 가지 행동을 할 때 활발하게 기능한다. 뇌가 가장 활발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때 자존감을 향상시키면 변화가 이루어진다. 소리 지르기, 물건 때려 부수기, 남 공격하기는 다른 동물들도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렇게 행동해서는 뇌 건강을 되찾을 수 없다. 인간답게, 세련되게 살자 - 302



자존감 수업 - 10점
윤홍균 지음/심플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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