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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다그 솔스타의 장편소설 '안데르센 교수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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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안데르센 교수의 밤'을 쓴 다그 솔스타는 1941년 노르웨이 사네피오르에서 태어나 1965년 단편집 '나선형'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소설가, 극작가로 활동하며 30여 권의 책을 냈다. 그의 작품은 2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는 등 북유럽 주요 문학상을 다수 수상했다. 노르웨이 문학비평가 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유일한 작가이기도 하다.


# 책을 읽은 이유


인터넷 서점을 통해 읽을 만한 책을 고르는 도중 노르웨이 소설이 눈에 띄었다. 평소 독일, 노르웨이 등 북유럽에 관심이 많았던 찰나 노르웨이 작가인 다그 솔스타의 책이 눈에 보였다. '안드르센 교수의 밤'의 심플한 책 디자인과 함께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사랑하는 이 시대의 소설가'라는 글자가 책을 고르는 데 한 몫을 했다.


# 줄거리


'안드르센 교수의 밤'에서는 주인공인 안데르센 교수가 크리스마스 이브날 자신의 집에서 나홀로 자축을 하며 창밖을 바라보다 맞은 편에 사는 한 남성이 여성을 목을 졸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다.


살인 장면을 목격한 안데르센 교수는 경찰에 신고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 신고를 하지 않고 침묵을 선택한다. 그는 자신이 신고하지 않아도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한편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동창을 만나기 위해 모임에 간다.


모임에 가서도 상념에 빠질 뿐 고민을 해결하지 못한 안데르센 교수는 여행을 간 이후에도 아무런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온 후 며칠이 지나 밖을 나돌던 안데르센 교수는 한 일본 스시 가게에서 한 남성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는 바로 여성을 살해한 살인범인 헨리크 노르스트룀이었다.


헨리크 노르스트룀과 함께 식사하고 자신의 집에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얼떨결에 약속까지 잡은 안데르센 교수는 이후 자신이 왜 신고하지 않았는지 후회를 하게 된다. 그러는 한편 자신은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신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소 믿지도 않는 신을 불러내면서까지 스스로를 해명한다.


'안데르센 교수의 밤' 줄거리는 이렇게 끝나는데 중간마다 작가가 안데르센 교수를 통해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많다. 특히 이 책을 통해 노르웨이의 도시와 음식, 문화가 소개되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나라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전위 예술이라고 불리는 아방가르드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책 내용 자체는 간략하게 소개된 줄거리에 비해 살짝 난이도가 있는 편이다. 하지만 다그 솔스타가 '안데르센 교수의 밤'을 통해 노르웨이의 여러 문화를 소개하는 것처럼, 나 역시 내가 현재 사는 도시의 문화를 소개하며 한 편의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거룩한 밤' 오늘 밤 열두시가 되면 찾아올 그 시간, 많은 노르웨이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열두시 이전은 아직 '거룩한 밤'이 아니다. 지금은 '거룩한 밤' 직전의 저녁일 뿐, 혹은 '고요한 밤'이거나 - 8


저 두꺼운 커튼 뒤에 젊은 남자가 죽은 여자와 함께 있어. 그가 방금 살해한 여자야. 그리고 나는 그걸 알고 있지. 하지만 난 아무 대응도 안 하고 있어. 전화를 했어야 해. 다른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참 희한하군. 그렇게 했어야 한다는 건 알아. 하지만 할 수가 없어. 바로 그거야. 그냥 할 수가 없는 거야 - 22


그는 살인 사건을 목격했으나 신고하지 않았다. 그렇다. 정말로 신고하지 않았다. 그는 신고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으며 왜 그런지 이유도 알고 있었다. 살인은 이미 일어나버렸다. 쟁점은 그것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이미 일어났고, 그는 목격자라는 것.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그들에게 경고해줄 수는 없었다 - 30


그 젊은 여자가 다시 창가에 서는 일은 없을 거야. 지난 이틀간 나는 여자가 다시 창가에 나타나기를 바랐는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 여자는 죽었어. 살해당했다고, 커튼은 닫혀 있어. 다시 커튼이 열릴 때 창가에 서 있는 건 바깥에 내다보는 살인자일 거야. 그를 잡는 데 나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어. 비록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지만 내가 그런 피해를 줄 순 없어 - 32


시대의 정신이란 이렇게 작동하는 것이어서, 한 시대에 갇힌 사람들은 보지 못하지만 다른 시대에, 밖에서, 해방된 상태로 사진 속 우리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역력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 60


그는 실망했던가? 창문을 지나친 형체가 여자이기를, 지금 그 금발의 젊은 여자가 창가에 서 있기를 바랐던가? 안데르센 교수는 알 수 없었다. 그가 그런 일을 바랐던 거라면, 바로 그 때문에 현실에서는 생각 속에서든 이 창가와 건너편 창문 풍경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거라면, 그것은 비현식절인 희망이자 사실상 기적을 바라는 기도였다. 혹은, 결정적인 순간에 안데르센 교수의 감각이, 그의 눈이 신뢰할 수 없는 것이기를, 그래서 그가 보았다고 생각한 것이 환상이나 환각이었기를 바라는 기도였던 걸까? 그가 정말로 그런 희망은 품었던가? 모든 것을 감안할 때, 그것은 자신의 이성에 문제가 있다는 의지가 된다 해도? 그게 아니라면 그가 보기를 바랐던 것이 바로 이것, 살인자의 얼굴이었던가? 안데르센 교수는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울음이 나왔다 - 82


우리가 과거와 맺는 관계는 깊은 무관심이 특징이야. 말로는 관심이 있다고 해도, 그리고 과거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면서 그게 진심이라고 느낀다 해도 달라질 건 없어. 가장 중요한 문제인 건 분명해.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과거와 결속되어 있다고 느끼는 건 의무감 때문이야. 우리의 신체는 정신적 불명을 이루고자 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그것을 성취할 능력이 부족한 것 같네. 문학 교수로서 확실히 말할 수 있어.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야. 자네엑, 나의 동료에게, 내게 이제 역사의식이 없다고 생각하면 온 신경이 공포에 차 소리를 지르는 것 같네. 그건 우리가 가면 우리의 시대 또한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야 - 99


박싱 데이 저녁에 그곳에 서 있던 젊은 남자일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남자가 창문에 나타날 때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가에 나타난 남자는 확실히 그때 그 사람이었다. 그는 아직 거기 있었고, 안데르센 교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그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반사적인 의식이 갑자기 표면으로 떠올라 불안이 그의 몸을 따라 흘렀다.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건가. 의문이 들어서였다. 그가 느끼고 있는 안도감이 실상은 무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정반대가 되어야 했다. 그는 그 남자가, 살인자가 거기에 있다는 이유로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아침 트론하임에서 떠오른 의혹이 사실이었다면 어땠을까? 그 남자가 어디론가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가 크리스마스 동안 아파트를 빌렸다가 지금은 떠난 거라면, 그리고 그렇게 간단한 안데르센 교수의 삶에서 사라진 거라면, 그야말로 진정으로 안심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실상은 그와 정반대라는 점이 안드르센 교수에게 극도의 안심을 안겨주었다 - 112


이렇게 걱정스러운 건 신고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아니다. 결국 그것 때문인가? 설령 이걸 설명할 수 있다 쳐. 그런데 베른트와는 왜 상의할 수 없었던 거지? 베른트나 다른 사람을 왜 끌어들일 수 없었을까? 그것이 이유야. 그게 바로 숨은 이유라고. 이렇게도 이상하고 비참한 상황이라니, 내가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불길해. 나는 누구지? 이곳에서 앉거나 서거나 걸어다니며 뭘 어떡해야 할지 모른 채로, 사람 자체와도, 그의 악행과도 절대로 엮이고 싶지 않은 남자가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는 나는 도대체 누굴까? 그가 사라지면 나는 닷 ㅣ자유다. 하지만 나는 다시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는 것 같지도 않아. 이건 확실히 뭔가를 의미해, 그런데 그 의미가 뭐지? - 115


설령 이럴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 든다 해도, 감히 생각할 엄두가 안 나는 그 악행, 저 아파트에서 커튼이 쳐진 후 일어난 그 일에 나는 스스로 얽매인 거야. 시체는 어디 있는 걸까? 여자의 피와 다른 모든 끔찍한 흔적은? 젊어 보였던 금발 여자. 저 못된 악마는 지금껏 저 안에서 뭘 했을까? 자신이 할 일을 감당하기 위해. 시체 옆에서 홀로, 피, 시체는 어디 있는 걸까? 이제는 어디론가 치워졌겠지. 커튼도 다시 젖혀졌고 그 젊은 남자는 저녁에 밖에 나가 볼일도 보고 있으니까.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간에 - 116


문제의 핵심은 그거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게 아냐. 전혀 아니지. 하지만 다른 식으로 행동할 수는 없었어. 그 사람이 살인자라고 해도, 그를 밀고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역겨워. 그 사실을 반드시 고려해야 돼. 난 그런 감정을 이해하고, 지지해. 하지만 베른트나 다른 사람들에겐 왜 말하지 못했을까? 그와 관련해 내가 두려워한 건 뭐지? 그게 이해가 안 돼. 베른트가 내 태도에 반대하고 날 비난할까봐 두려웠던 걸까? 그건 아닌 것 같아. 뭐라고 반대할지 나도 알고 모두 동의하니까. 누군가가 살인을 목격하고도 사회에 알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 어떤 문명사회도 받아들이고 변호할 수 없을 거야. 그것은 분명 원초적인 범죄지. 살인을 저지른 자가 자기 아들이라도 신고할 의무가 있고 보통은 그렇게 해. 그리고 신고하지 않는다면 지금 나보다 훨씬 더 심한 고뇌를 겪겠지. 그 모든 것을 알고 반대할 근거도 없지만, 그래도 난 그 사람을 신고할 수 없어. 그때도, 지금도 마찬가지야. 내가 무한한 동정심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나? 다시 말해, 모든 한계를 초월한 연민일까? 내가 그 살인자와 함께 고통받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기를 원하는 걸까? 하지만 피해자는 어떡하고? 그녀는 죽었어! 원초적 범죄의 피해자지만, 그래도 이미 죽은 사람이야. 살인자는 살아 있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야 해. 나와 함께, 모든 통제에서 벗어나 은밀하게, 살인자와 침묵하는 목격자, 침묵하는 목격자의 존재를 모르지만 그에게 감시와 관찰을 당하는 살인자. 우리는 언제 만날 것이가? 이건 도대체 뭔가? 난 왜 그 사람이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리길 원치 않을까? 그가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리는 걸 왜 두려워할까? - 118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헨리크 노르스트룀이 자기 아내를 죽였다고 믿었기 때문에, 혹은 착각했기 때문에, 법망이 곧 그를 덮칠 거라고, 그가 발각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었다. 그러자 마음이 아주 편안해져서, 창가에서 살인을 목격한 뒤로 두 달이 흐르는 동안 거의 평소와 같은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일종의 관찰자가 되었다. 어쩌면 그가 건너편 아파트를, 그리고 최근에는 거기 사는 사람을 주시한 것은 원초적인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곧 운명의 심판을 받을 남자를 보기 위해 가끔씩 흘낏거린 정도, 하지만 이제 그는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살인자와 살인을 목격한 자신, 그리고 다음주 수요일에 그 살인자는 그의 집 초인종을 누를 것이고, 두 사람은 비에르케 경마장에 함께 가서 살인자의 말이 최초로 경주에 나가는 모습을 볼 것이다 - 169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신고를 했을 거야. 단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기 위해서라도, 크리스마스 전날 밤 창가에 있던 그 여자는 누구였을까? 지금은 죽은 여자, 왜 그 여자를 죽였을까? 시체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그리고 왜 아무도 실종 신고를 하지 않을까? 정말로, 다시 옷을 입고 곧장 마요르스투아 경찰서로 가고 싶어질지도 모르겠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라도 말야 - 170


살인을 목격하고도 헨리크 노르스트룀을 신고하기를 꺼리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 사건 발생 당시 신고하지 못했던 건, 그래,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로 인한 곤란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사실을 몸과 마음으로 경험한 지금도 그를 신고하지 못하는 건 왜일까? 그런 부작위 죄는 결코 변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행동은 옹호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모든 문명의 전제다.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떤 경우에라도, 신고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살인자와 함께 이방인이 되었다. 그의 눈에도 자신은 이방인이었다. 살인자와 함께, 그것은 자업자득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뒤에는 신이 있었다. 그런 당연한 질서를 깨뜨리는 일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설명하거나 손을 대거나 기억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금기가 된 궁금적인 이유로서의 신, 종교가 없는 안데르센 교수로서는 그걸 맥락의 사고가 대단히 생경했지만, 어쩌다 얽혀들어 아무리 절실히 원해도 헤어날 수 없는 문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보니 그런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누구도 자기 멋대로 신을 지어낼 수는 없어.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것이 자명한 진리이며, 그것을 명심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다 - 177



안데르센 교수의 밤 - 10점
다그 솔스타 지음, 민은영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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