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 책 '단 한번의 삶' 속 글귀 모음
오래 전 '너의 목소리가 들려', '살인자의 기억법' 소설 책을 읽고나서 이후 나온 작품과 출연했던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인스타그램 팔로잉까지 할 정도로 김영하 작가의 팬이 됐다.
그는 1995년 당시 영화 '주홍글씨' 원작인 '겨울에 대한 단상'으로 등단하여 이듬해 첫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제1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하며 이후 여러 장편소설, 단편소설, 산문집, 에세이를 출간했다.
교양 방송 프로그램인 '알쓸신잡', '알쓸인잡'을 통해 더욱 인지도를 높였으며, 2024년에 진행했던 유료 이메일 구독 서비스 '영하의 날씨'에 연재된 글을 다듬어서 '여행의 이유' 이후 6년 만에 신작 도서 에세이 '단 한번의 삶'을 지난 2025년 4월에 출간했다.
김영하 작가의 책 에세이 '단 한번의 삶'은 목차 포함 총 15개의 주제를 통해 베트남 전쟁에 파병한 군인 출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여군이었던 어머니와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공인회계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절하고 작가가 되었던 사연이 담겨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접했던 문학, 영화 작품에 대해 소개하면서 그동안 살아오며 축적된 경험을 통해 인생관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알려준다.
1990년도 PC통신 시절부터 글쓰기를 시작한 김영하 작가의 책 도서 에세이 '단 한번의 삶'을 읽으면서 소설 작품에서는 알지 못했을 그만의 생각과 가치관에 대해 알 수 있었고, 나 또한 30대 후반이 되고나서 깨닫게 된 생각에서 공통점이 있었기에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또한 에세이에 소개한 넷플릭스 드라마 '리플리 더 시리즈'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줄거리를 찾아보니 흥미진진할 것 같아 보려고 한다.
2024년 4월 에세이 산문집 '여행의 이유' 이후 김영하 작가가 1년 만에 펴낸 '단 한번의 삶'은 흘러지나간 과거의 인생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작품으로 후기 포함 총 198페이지로 하루 이틀이면 완독할 수 있으니 읽을 만한 도서 에세이 책을 찾는다면 아래 글귀를 참고해 읽어보면 좋겠다.
※ 기억하고 싶은 김영하 작가 '단 한번의 삶' 글귀
구세주의 탄생은 그렇다고 쳐도 평범하 인간의 생일은 왜 축하하는 것일까? 그것은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환대의 의례인 것이다.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좋은 곳에 온 사람들끼리 환대하는 것은 쉽다. 원치 않았지만 오게 된 곳, 막막하고 두려운 곳에 도착한 이들에게 보내는 환대야말로 값진 것이다.
생일 축하는 고난의 삶을 살아온 인류가 고안해낸, 생의 실존적 부조리르 잠시 잊고, 네 주변에 너와 같은 문제를 겪는 이들이 있음을 잊지 말 것을 부드럽게 환기하는 의식이 아닌가 싶다.
괴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동료들이 주는 이런 의례마저 없다면 삶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로 시작된 사건이라는 우울한 진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 31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의 즐거운 목욕탕 나들이를 아버지 자신이 망쳤고, 그때 나와 동생이 빼앗긴 기쁨은 신발 한 켤레보다는 더 중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행동을 용서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모든 부모가 언젠가는 아이를 실망시키고, 그 실망은 도둑맞은 신발같은 사소한 사건 때문에 비롯된다는 것, 그 누구도 그걸 피할 수 없고, 나처럼 어떤 아이는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그 사소한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기억하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이해하면서도 아쉬워한다.
그렇지만 그게 부모를 증오하거나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누군가를 실망시킨다는 것은 마치 우주의 모든 물체가 중력에 이끌리는 것만큼이나 자명하며, 그걸 받아들인다고 세상이 끝나지도 않는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그 사람이 나에게 해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리해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 60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이 뱅글뱅글 돌며 함께 추는 왈츠와 닮았다. 기대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면 실망이 한 발 뒤로 물러나고 실망이 오른쪽으로 돌면 기대도 함께 돈다.
기대의 동작이 크면 실망의 동작이 커지고 기대의 스텝이 작으면 실망의 스텝도 작다. 큰 실망을 피하기 위해 조금만 기대하는 것이 안전하겠지만 과연 그 춤이 보기에도 좋을까? - 61
인간은 보통 한 해에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고, 십 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한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새해에 세운 그 거창한 계획들을 완수하기에 열두달은 너무 짧다. 그러나 십 년은 무엇이든 일단 시작해서 띄엄띄엄 해나가면 어느 정도는 그럭저럭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 72
'엔트로피의 증가'라는 무정한 물리학적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쩐지 너무 건조하다. 마음으로 납득되지가 않는 것이다. 대신 이런 식으로는 잘 받아들일 수 있다.
인간은 모두 변한다. 단, 설득력 있는 '도발적 사건'을 통해서, 그런데 인물의 변화를 주로 이야기를 통해 접하다보니 어느새 많은 이들의 변신을 많이 보아왔다.
그들의 변화를 접할 때마다 자동적으로 그걸 설명할 수 있는 '도발적 사건'을 찾곤 했다. 누군가의 변질, 누군가의 타락, 누군가의 성공, 누군가의 추락, 누군가의 돌변을 말할 때,
'걔가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 일이 있고 나서'로 설명하고 싶은 강한 충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 노력한다. 우주의 만물이 그러하고, 내가 그러했듯, 그럴듯한 이유 없이도 인간은 얼마든지 변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 79
어린 시절의 일기에는 '나'에 대한 말들로 가득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일까를 알기 위해 애썼던 십대의 내가 거기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라는 존재가 저지른 일, 풍기는 냄새, 보이는 모습은 타인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천 개의 달처럼, 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비친 감각들의 총합이었고,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 믿었던 것들은 말 그대로 믿음에 불과했다 - 102
인간은 그 어떤 잔혹한 고통이라도 견딜 수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라는 것을 그때 처음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내가 전혀 몰랐던 것은 조선왕조의 만행에 대해 놀라고 있던 바로 그때에 남영동과 남산에서도 다른 약속을 함께 믿으며 고문을 견디던 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순교자와 양심수들에게 세이프워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배교'와 '전향'이면 고문을 멈출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안전어를 쓰지 않았다.
원하면 내려올 수 있는 러닝머신과 처벌 기계로서의 트레드밀, 아예 안전어가 없는 무의미한 시련과 있어도 내뱉지 않고 감내하는 극한의 고통, 그것은 그저 의미의 있고 없음의 차이일까?
만약 그렇다면 언젠가 '잘 통제된 고통'이 아닌, 그야말로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끝 모를 고통에 직면할 때, 나는 무엇으로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고통이 닥치지도 않았는데 앞질러 두려워하는, 아니 혐오하는 이런 증상은 전 세계적 현상이 되어 있다 - 113
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은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리플리'라는 제목의 시리즈로 다시 각색되었다. 알랭들롱이나 맷 데이먼과는 다른 풍모의, 다소 나이가 든 것 같은 주인공 때문에 처음에는 몰입이 잘 되지 않았지만 곧 빠져들어 마지막 회까지 다 보고 말았다.
돌아보면 나는 언제나 이런 유의 이야기에 끌리곤 했다. 스탕달의 '적과 흑'이 그랬도 '위대한 개츠비'가 그랬다. 신분을 속이거나 없는 교양을 꾸며내서라도 더 높은 사회적 존중을 얻으려는 인물들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은 언제나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어떤 불안을 건드린다.
그 목소리는 이렇게 속삭인다. 너는 교양인의 흉내를 잘도 내고 있구나.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나는 못 속이지. 너는 아직 충분하지 않아. 너는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그런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나는 여지없이 그 동기의 연구실로 소환된다. 모르는 성악가가 모르는 언어로 모르는 노래를 부르는 그 방의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교양인의 관용과 너그러운 미소를 바라고 있다.
내가 어딘가 잘못된 곳에 와 있고,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다시 '이탈'해야만 할 것 같은 이 익숙한 충동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 134
대체로 젊을 때는 확실한 게 거의 없어서 힘들고, 늙어서는 확실한 것밖에 없어서 괴롭다. 확실한 게 거의 없는데도 젊은이는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잘 모르는 채로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만 한다.
무한대에 가까운 가능성이 오히려 판단을 어렵게 하는데, 이렇게 내려진 결정들이 모여 확실성만 남아 있는, 더는 아무것도 바꿀 게 없는 미래가 된다. 청춘의 불안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 137
사공 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보면 도달하게 되는 어딘가, 그게 미래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먼 미래에 도달하면 모두가 하는 일이 있다. 결말에 맞춰 과거의 서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 143
아두운 지하 술집에서 낭비했던, 눈이 지금보다는 훨씬 밝았던 이십대의 밤들에 나는 침대에 누워 책을 더 보고 있었어야 했다. 육체에 관한 한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세포는 무한히 복제되지 않는다. 그리고 복제될 때마다 열화된다. 애초의 유전자 정보는 손실되거나 변형되어 다음 세포로 전달된다고 한다.
인생 후반을 이렇게 열화 복제된 세포들과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인생은 후불제 같기도 하다. 그러나 세속적인 성공의 기준으로 볼 때 지금의 나는 이십대의 나보다 모든 면에서 크게 좋아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역시 선불제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과연 어느 쪽이 맞을까? - 158
자기파괴적 충동을 타고난 것은 불운이었지만,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내 '도덕적 운'이었다. 그냥 흘러가게 두었을 때, 삶은 자연스럽게 악몽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악몽을 문장으로 옮겨 쓰기 시작하고 나서야 내 안의 어둠은 조금씩 질서가 있는 이야기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나는 핸들에 처박도 있던 고개를 들어 비로소 주변의 세상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 181
내 삶이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를 무한한 삶들 중 하나일 뿐이라면, 이 삶의 값은 0이며 아무 무게도 지니지 않을 것이니, 존재의 이 한없이 가벼움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더는 단 한 번의 삶이 두렵지 않을 것 같다.
태어나지 않았을 때 나는 내가 태어나지 않은 것을 몰랐기에 전혀 애통하지 않았다. 죽음 이후에도 내가 죽었음을 모를 것이고, 저 우주의 다른 시공간 어디엔가는 내가 존재하지도 모른느 내가 삶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위안이다 -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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