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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생각해보면 뻔한 자기계발서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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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자기계발서다. 무엇이냐면 최근에 읽었던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의 미움받을 용기2다.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으려 했는데 예전에 일본 작가의 자기계발서에 몇 번 당한 적(?)이 있어 피하려고 했다.


(이런 걸 책이라고 쓰는구나 하는 수준. 나무야 미안해 수준?)


최근 들어 독서도 잘 안 했고 자기계발서는 거의 읽지 않은 상태에서 우연히 뉴스 기사를 통해 미움받을 용기2를 보게 되었다.


한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로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들러의 심리학을 주제로 토론을 나누는데 청년이 은근 건방지다.


혹시나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을까 구매했는데 다 읽고 나서 느낀 것은 남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들러의 심리학이 전하는 진정한 사랑과 자립, 협력 원리, 공동체 감각에 관해 철학자가 열심히 설명하지만 와닿는 건 없다.


그나마 재미있는 점은 거의 300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철학자의 말에 반박하던 청년이 끝에서 갑자기 태세전환을 한 것.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었다.


*


행복이란 그 자리에 머문 채로는 향휴할 수 없어. 걷기 시작한 길을 쉬지 않고 걷지 않으면 안 되네 - 17

존경이란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사람이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아는 능력이다. 존경이란 그 사람이 그 사람답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다 - 50

우리는 과거의 사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

인간은 누구나 '나'라는 이야기의 편찬자이고, 그 과거는 '지금의 나'의 정통성을 증명하기 위해 자유자재로 다시 쓸 수 있네 - 77

아들러 심리학에 '마법'은 없어. 신비한 마법이 아니라 건설적이고 과학적인, 인간에 대한 존경을 토대로 하는 인간 이해의 심리학, 그것이 아들러 심리학이라네 - 84

'전달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입구에 불과해. 최종적인 목표는 합의에 이루는 것이라네. 전하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어. 전달한 내용을 사람들이 이해하고 일정한 합의를 이룰 때 커뮤니케이션은 비로소 의미를 갖네. 자네와 나도 어떤 합의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지 - 124

인간이 미성년 상태에 있는 이유는 이성이 결여되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지시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결단도 용기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자기 책임하에 미성년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 132

교육하는 입장에 놓여 있는 사람, 그리고 조직의 운영을 맡고 있는 리더는 늘 '자립'을 목표로 내세워야 하네 - 136

본인의 인생은, 매일의 행동은 전부 스스로 결정하느 것이라고 가르쳐줄 것. 그리고 결정하는 데 필요한 자료(예를 들면 지식과 경험)가 있으면 제공해줄 것. 그것이 바람직한 교육자의 자세라네 - 138

조직은 상벌도 경쟁도 없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관철하지 않으면 안 되네. 상벌을 이용해 사람을 조종하려는 교육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멀리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해주게나. 민주주의란 경쟁원리가 아닌 '협력원리'에 기초해서 운영되는 공동체라네 - 154

모든 인간에게는 공동체 감각이 내재되어 있고, 그것은 인간의 정체성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뜻이지. 공동체 감각은 '익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발굴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감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걸세 - 164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 욕구를 '소속감'이라고 생각하네 - 166

'나'의 가치를 남들이 정하는 것. 그것은 의존일세. 반면 '나'의 가치를 내가 결정하는 것. 이것은 '자립'이지 행복한 삶이 어디에 있는지 답은 명확하겠지. 자네의 가치를 정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네 - 168

'남과 다른 것'에 가치를 두지 말고 '나는 나'라는 것에 가치를 두게나. 그것이 진정한 개성이라네. '나는 나'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타인과 비교하고 그 '차이'에만 주목하려는 것은, 타인을 속이고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삶의 방식이나 다름 없네 - 170

아이들이 언제까지나 '아이'로 있어주기를 바라지. 그래서 상벌이라는 형태로 아이들을 옭아매는 것이고. "다 너를 생각해서", "네가 걱정돼서"라는 핑계거리를 준비하고 아이가 더는 자라지 못하도록 붙잡아준다네. 이런 어른들의 태도에는 일말의 존경도 없을뿐더러 그런 어른들과는 좋은 관계를 맺을 수도 없네. 자립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을 경제적 측멱에서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하지만 비록 열 살짜리 아이일지라도 자립할 수 있고, 쉰 살이 되고 예순 살이 되어도 자립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네. 자립이란 정신의 문제인 셈이지 - 177

살기 위해서는 분업이 필요하고, 분업하기 위해서는 상호 '신용'이 필요하다. 거기에 선택의 여지는 없다.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신용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있을 수 없다.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 206

분업에 관해 아들러는 이렇게 말했네. "인간의 가치는 공동체에서 할당된 분업의 역할을 어떻게 완수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다시 말해, 인간의 가치는 '어떤 일을 종사하느냐'로 정해지는 것이 아닐세. 그 일에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로 정해지는 것이지 - 210

자기중심적인 인간은 '자신을 좋아해서' 자기만 바라보는 게 아닐세. 실상은 그와 반대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리는 통에 자기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거라네 - 228

인간에게 시련이나 결단의 순간은 입시나 취직, 결혼 같은 삶의 상징적인 이벤트가 있을 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야. 우리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가 시련이고, '지금 여기'라는 일상에 큰 결단이 필요하다네. 그 시련을 피해가는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어 - 236

'빠지기'만 하는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네. 그런 건 인생의 과제라고 부를 만한 가치가 없어. '의지력'을 발판 삼아 아무것도 없는 곳에 쌓아올려야 하기 때문에 사랑의 과제가 어렵고 힘든 것이라네. 많은 사람이 이러한 원칙을 모른 채 사랑을 말하려 한다네. 그러다 보니 인간이 실제로 관계를 맺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운명'이니 동물적인 '본능'이니 하는 말에 기댈 수밖에 없는 걸세.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임에도 의지나 노력의 테두리 밖에 있는 것이라 여기고 직시하지 않네. 쉽게 말해 '사랑하는 것'을 하려고 않지 - 248

아들러는 말했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만 자신의 가치를 실감할 수 있다고. 나의 가치를 실감하고 '여기에 있어도 좋다'라는 소속감을 얻을 수 있지. 하지만 한편으로 나의 행동이 정말로 도움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네. 바로 눈앞에서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어도 그것이 '진심'인지는 원칙적으로 알 수는 없어. 그래서 나온 것이 공헌감이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라는 주관적인 느낌이 든다면, 즉 공헌감이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더 이상 근거를 찾을 필요가 없다. 공헌감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자. 공헌감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자. 우리는 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음을 실감하네. 우리는 교우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누군가에 도움이 되고 있음을 실감하지. 그렇다면 행복은 거기에 있는 거라네 - 258

이기적으로 '나의 행복'을 바라는 것도, 이타적으로 '너의 행복'을 바라는 것도 아닐세. 나눌 수 없는 '우리의 행복'을 쌓아올리는 것. 그것이 사랑이네 - 260

인간은 변할 수 있어. 생활양식을, 세계관이나 인생관을 바꿀 수 있어. 사랑은 '나'였던 인생의 주어를 '우리'로 바꿔주지. 우리는 사랑을 함으로써 '나'로부터 해방되어 자립을 이루고,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다네 - 267

사랑은 진정한 자립이네. 어른이 되는 거지. 그래서 사랑이 힘든 거라네 - 27

'관계'를 맺을 용기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운명의 사랑'이라는 환상에 매달린다네. 지금 자네가 그러는 것처럼. 눈앞에 사랑할 누군가가 있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이 사람은 안돼"라고 거부하고 "더 이상적이고 더 완벽하고 더 운명적인 상대가 있을 거야"라고 시선을 떨구지. 그 이상의 관계에 발을 들이려 하지 않고 모든 후보자를 나의 손으로 제외하는 거라네. 그렇게 지나치다 싶을, 잊지도 않은 이상형을 들먹이면서 살아 있는 인간과 관계 맺는 걸 회피하네. 그것이 '"만날 사람이 없다"라고 한탄하는 사람의 정체라고 생각하게. 그리고 가능성 속에 살고 있지. 행복은 저편에서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은 아직 행복이 오지 않았지만, 운명의 사람과 만나기만 하면 모든 일이 잘될 거야"라고. 확실히 들어서 기분 좋아지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 287

물론 누군가와 만나서 '운명'을 느끼고. 그 운명에 따라 결혼을 결심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믿기'로 결심한 것뿐이라네.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말했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강렬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결심이고 결단이고 약속이다" 만남의 형태는 아무래도 좋네. 진정한 사랑을 맺기로 결심하고, '두 사람이 달성하는 과제'와 마주할 수 있다면 어떤 상대와 사랑할 수 있어 - 289

아들러 심리학은 모든 결정론을 부정하고 운명론을 거부하네. 우리에게 '운명의 사랑'은 없거니와 그런 사람이 나타나는 것을 기다려서도 안 되네. 기다리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이 원칙을 양보할 생각은 없네. 하지만 배우자와 함께 걸어온 긴 세월을 돌아봤을 때, 거기에서 '운명적인 무언가'를 느낄 수는 있겠지. 그런 경우에 운명이란 사전에 정해진 것이 아니네. 우연히 일어난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의 노력으로 쌓아올린 것이겠지 - 290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사랑밖에 없네. '편하고 싶다', '편해지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은 잠깐의 쾌락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행복은 얻을 수 없네. 우리는 타인을 사랑할 때만 자기중심성에서 해방될 수 있지. 오직 타인을 사랑할 때만 공동체 감각에 도달하네 - 296



미움받을 용기 2 - 2점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지음, 전경아 옮김/인플루엔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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